송광록(宋光綠, ? ~ ?)은 조선 후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여산(礪山) 송씨이며, '노래의 왕'으로 불린 송흥록(宋興綠)의 아우이자, 근대 명창 송만갑(宋萬甲)의 조부이다. 정조(재위 1776~1800) 무렵 전라도 함열(咸悅) 웅포(熊浦)에서 태어나 운봉(雲峰) 비전리(碑殿里)에서 살았으며, 중년 이후에는 구례(求禮)에서 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형인 송흥록의 고수(북을 치며 반주하는 연주자)로 여러 해 동안 활동하였다. 그러나 당시 고수에 대한 대접이 좋지 않자 이에 불만을 품고 형의 곁을 떠나 제주도로 건너가 4~5년간 소리 공부를 하여 명창이 되었다. 이후 형 송흥록과 기예를 겨룰 만한 대명창으로 성장하였으며, 늘 형의 소리를 기탄없이 비평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송광록은 특히 「춘향가」에 능하였고, 그의 더늠(장기 대목)으로는 진양조 우조로 부르는 긴사랑가 중 〈만첩청산 늙은 범이〉(만첩청산, 萬疊靑山)가 전해진다. 신재효(申在孝)는 그의 『광대가(廣大歌)』에서 아홉 명의 명창 가운데 하나로 송광록을 꼽았으며, "창전벽해(唱前碧海)에 걸릴 데가 없었으니 만리풍범(萬里風帆) 왕마힐(王摩詰)"이라 평하여 그의 소리 실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판소리 평론으로도 유명하였으며, 그의 소리제는 아들 송우룡(宋雨龍)에게 전해져 판소리 동편제(東便制)의 큰 인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였다. 생몰년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