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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현 (관료)

손지현(孫之鉉, 1867년 음력 3월 14일 ~ ?)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관료이다. 일본식 이름은 마고나가 히가시(孫長 東)이며, 본관은 밀양(密陽),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출생 및 초기 생애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출생으로, 잠시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유아기를 보낸 후 밀양군 밀양면 교동리에서 성장하였다. 조선총독부의 인사기록에 의하면 본적지는 교동리 812번지로 되어 있다.

관료生涯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 1885년 3월 성균관에 입학하여 유생이 되었고, 같은 해 경기전참봉과 목릉참봉을 지냈다. 1887년에는 외무부참서관, 정3품으로 승진한 뒤 외무부 총무국장을 역임하였다. 1899년 진주군수, 1900년 조선 선조의 능인 목릉 참봉으로 임명되는 등 대한제국 말기에 관리로 재직하였다. 관료 생활 외에도 1908년 대한학회 회원, 1909년 교남교육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외부 참서관을 거쳐 1910년 밀양군수로 발령받았으며, 그해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후 조선총독부로 소속을 옮겨 다시 밀양군수에 임명되었다. 1912년 울산군수, 1914년 경상남도 창원군수, 1916년 경산군수를 역임하다가 1918년 퇴직하였다. 퇴관 당시 종7위에 서위되어 있었고,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을 수여받았다.

퇴직 이듬해인 1919년에는 경상남도청 제3부 도참사(道參事)에 임명되었다. 참사는 도지사의 자문직으로, 각 도마다 조선인 참사가 3명씩 임명되었다. 1919년 3·1 운동 발생 이후 같은 해 5월 18일 경상남도 울산, 동래, 김해, 통영, 창원, 마산, 부산 지역의 만세 운동 가담자를 설득·해산시키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나,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거절하였다.

1920년 민선으로 경상남도 도평의원에 당선되어 지역 유지로 활동하였으며, 1921년 중추원 참의 후보자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1928년 쇼와대례기념장을 수여받았다.

사후 평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아들 손영목(총독부 관리)과 함께 선정되었다. 사망 연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가족 관계 아들 손영목이 있으며, 손자로 손학개, 손학웅, 손학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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