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갑(孫仁甲, ?~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의병장이다.
생애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생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일찍이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에 이르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도 합천(陜川)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전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의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중위장(中衛將)을 맡아 실질적인 군 지휘 책임자로서 활동하였다. 합천군수 전현룡(田見龍)이 적을 두고 달아나자 그를 대신하여 한때 합천가장(陜川假將)을 맡기도 하였다.
주요 전투
1592년 6월 초순, 낙동강 연안 무계(茂溪)에서 벌어진 무계전투(茂溪戰鬪)에서 정인홍군의 선봉장으로서 3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적진을 포위한 뒤, 50여 명의 정예병을 직접 이끌고 왜군의 병사(兵舍)에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적병 10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같은 해 6월 말, 초계(草溪)의 마진전투(馬津戰鬪)에서도 낙동강을 항해 중이던 왜선단(倭船團)을 급습하여 격파하였다. 그러나 잔류 적선을 섬멸하기 위해 말을 타고 물속으로 추격하던 중 하상의 묽은 모래와 진흙에 빠져 애마와 함께 사망하였다.
사후
이러한 공로로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임명되었으나 취임 전에 전사하였다. 사후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후지당실기(後知堂實記)』 2권 1책이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에는 밀양 출신 의병장 손인갑과 그의 아들 손약해(孫若海) 등의 충절을 기리는 삼강문(三綱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