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사막(孫思邈, 생년 미상 ~ 682년)은 중국 수(隋)와 당(唐)나라 초기에 활동한 의학자이자 도사이다. 경조부 화원현(京兆部 華原縣, 오늘날 산시성 야오저우구 일대) 출신이다. 노자·장자 등 도가 사상과 음양, 의약, 그리고 천체 운행 관측(추보)과 수학 등 여러 학문에 두루 능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후세에 '약왕(藥王)' 또는 '약신(藥神)'이라 불렸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인명으로 등재된, 공신력 있는 여러 자료를 통해 그 존재가 확인되는 역사적 인물이다.
손사막의 생년에 대해서는 학계에 여러 설이 존재한다. 크게 541년설, 581년설, 601년설이 제기되고 있으며, 사망 연도는 대체로 682년으로 보고 있다. 향년에 대해서도 101세설과 141세설 등이 혼재하며, 생애에 관한 정확한 세부 사항은 사료 간 차이가 있어 단정하기 어렵다.
그의 대표적 저술로는 의학서 《비급천금요방(備急千金要方)》(줄여 《천금방》)과 《천금익방(千金翼方)》이 있다. 이들 저서는 각종 질병 수백 종을 다루고 질병의 예방·치료 처방을 약 1만 첩 가까이 수집한 것으로 알려져, 중국 최초의 임상 백과전서적 의서로 평가된다. 이 가운데 아래턱뼈 탈구의 치료원칙은 현대 의학의 원칙과 부합하는 점이 주목되며, 갑상선 부종 치료에 요오드가 포함된 해조류 등을 권한 기록, 야맹증과 각기병에 대한 영양학적 접근 등은 후대에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입증된 사례로 꼽힌다. 또한 당뇨병 환자의 소변이 달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침·뜸 시술을 경계한 기록도 남겼다.
손사막은 의사로서의 윤리, 즉 '대의정성(大醫精誠)'의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전통 의학에도 영향을 미쳐 허준의 《동의보감》 첫머리에 손사막의 글 가운데 일부가 인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생전에 여러 제왕(수 문제, 당 태종, 당 고종 등)의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한다. 다만 손사막과 당 태종과의 관계 등 일부 일화는 후대에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손사막은 전기 자료로 《구당서》 권191과 《신당서》 권196의 열전에 실려 있으며, 대한의사학회 등 학계에서도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생애 일부 세부 사항, 특히 출생 연도와 특정 일화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사료 간 차이와 후대 윤색 가능성으로 인해 확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나, 인물 자체는 중국 의학사에서 널리 인정받는 실존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