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복가(孫伏伽, ?~658)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관료이자 신하다. 당 고조(唐高祖) 무덕(武德) 5년(622년)에 실시된 과거 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이름이 확인되는 최초의 장원 급제자로 기록된다. 손복가의 출신지는 베이저우(貝州) 우청(武城, 현재의 허베이성 구청현 지역)이다.
손복가는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 휘하에서 활동하며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당 태종이 누군가를 처형하라는 조서를 내렸을 때, 손복가는 형벌이 지나치다고 비판하며 이를 반대하였다. 태종은 그의 충언을 받아들여 손복가에게 난릉공주원(蘭陵公主園)을 상으로 내렸다. 이후 다른 신하가 상이 너무 과하다고 비판하자, 태종은 신하들이 자유롭게 군주를 비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정관(貞觀) 연간의 열린 정치 분위기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불리는 당 태종 시대의 태평성대를 이끈 요인으로 평가된다.
손복가는 하현(下縣)의 법조(法曹, 법률 관련 관직) 출신으로 상소를 올렸으며, 당 고조 역시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인 바 있다. 그의 생애는 당 초기의 개방적 언로(言路) 문화를 상징하는 사례로서 한국의 조선왕조실록 등 후대 역사 기록에서도 인용된 바 있다. 손복가가 삼국지의 손권(孫權)의 후예인지 여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