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교(孫皎, ? ~ 219년)는 중국 삼국 시대 오나라의 황족이자 장수이다. 자는 숙랑(叔朗)이며, 손견(孫堅)의 동생인 손정(孫靜)의 셋째 아들이다.
생애
손교는 처음에 호군교위(護軍校尉)에 임명되어 2천여 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조조(曹操)가 여러 번 유수(濡須)를 공격할 때마다 달려가 방어하여 정예(精銳)라는 칭호를 얻었고, 도호(都護) ·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승진하였으며 정보(程普)를 대신하여 하구(夏口)를 다스렸다. 이후 황개(黃蓋)와 형 손유(孫瑜)가 사망하자 두 사람이 거느리던 군대를 이어받았고, 사이(沙羨) · 운두(雲杜) · 남신시(南新市) · 장릉(竟陵)을 봉지로 받았다.
척후병이 위나라 변경의 장수와 미녀를 사로잡아 바친 일이 있었는데, 손교는 그들에게 옷을 갈아입혀 돌려보내며 "다만 조씨(曹氏)를 주적으로 삼을 뿐, 위나라의 노약자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말하였다. 이 일로 장강(長江)과 회수(淮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귀의하였다.
유비(劉備)가 촉(蜀)을 차지한 후, 여몽(呂蒙)이 손권(孫權)의 명을 받아 장사(長沙) · 계양(桂陽) · 영릉(零陵) 세 군을 되찾은 뒤, 손교는 여몽의 명으로 남아 뒷일을 처리하였다. 여몽이 관우(關羽)가 지키는 남군(南郡)을 습격하려 할 때, 손권은 손교와 여몽을 좌우 도독(左右都督)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여몽이 주장은 한 명만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여 여몽이 총지휘관이 되고 손교는 후속 부대를 맡았다. 관우를 사로잡고 형주(荊州)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손교는 공을 세웠다.
건안(建安) 24년(219년)에 사망하였다. 그 공으로 아들 손윤(孫胤)이 단양후(丹陽侯)에 봉해졌다.
인물
손교는 재물을 가볍게 여기고 베풀기를 좋아하였으며, 교우 관계에 뛰어나 제갈근(諸葛瑾)과 두터운 관계를 맺었다. 사소한 일로 감녕(甘寧)과 불화가 있었으나, 손권의 꾸짖음을 받고 상소하여 사죄한 뒤 감녕과 다시 두터운 교분을 맺었다.
친족 관계
손교는 손정의 아들이며, 형으로 손호(孫暠)와 손유(孫瑜)가 있고, 아우로 손환(孫奐)과 손겸(孫謙)이 있다. 아들로는 손윤(孫胤) · 손희(孫睎) · 손자(孫咨) · 손미(孫彌) · 손의(孫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