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간의 교류(라틴어: Communicatio idiomatum, 영어: communication of properties)는 기독교 신학, 특히 그리스도론(基督論)에서 그리스도의 인격(person)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두 본성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인격의 단일성(unity)을 전제로 할 때 그의 신적 속성과 인간적 속성 및 경험을 그의 다른 본성의 관점에서 신적 인격(하나님 아들)에 적절히 귀속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념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
이 개념의 원초적 단서는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 서기 약 100년경)에게서 처음 발견된다. 그는 "하나님의 피", "나의 하나님의 고통", "마리아에게 잉태되신 하나님"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단일성을 강조하였다. 이후 터툴리아누스(Tertullian, 서기 약 200년경)는 구원자가 두 '실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본성이 그 고유한 특성을 보존한다고 주장하면서 두 본성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탐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나아가 그는 때때로 "하나님이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참으로 죽으셨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속성간의 교류 교리를 예고하였다.
이후 이 개념은 5세기에 들어 체계화되었다. 서기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와 20년 뒤 칼케돈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위격적 연합(hyostatic union), 즉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결합된다는 교리가 확립되면서, 속성간의 교류에 대한 기술적 용어와 개념이 정립되었다.
교파 간의 입장 차이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칼빈주의(개혁파)와 루터파 사이에 속성간의 교류에 대한 해석 차이가 두드러졌다.
개혁파(칼빈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위격(person) 안에서 엄격하게 결합되어 있으나, 각 본성의 고유한 속성은 보존된다고 본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은 그의 신성과는 구별되며, 그의 인성은 여전히 하늘에 남아 있고, 그의 신성만이 편재(遍在)한다고 이해한다. 이러한 이해는 칼빈주의의 성만찬관, 즉 그리스도가 성찬에 실질적으로 그러나 요소와 구체적으로 결합되지는 않은 영적 방식으로 임재한다는 입장과 맞물린다.
루터파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그 속성들을 보다 완전하게 공유한다고 본다. 루터교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의 속성들(전능, 전지, 편재 등)에 참여하며 신성의 "위엄"을 부여받는다는 '장엄의 유형'(genus maiestaticum)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에 따라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적, 육체적 임재가 떡과 포도주의 "안에, 안에서, 아래에"(in, with, under) 실재한다는 성찬적 연합(sacramental union) 교리를 주장한다.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속성간의 교류를 "그리스도의 양성이 제각기 상대편으로 침투하며, 그의 인성은 신성의 속성들에 참여한다"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신학적 의의와 논쟁점
속성간의 교류 교리는 초기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 사이의 관계성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특히 루터에게서 이 교리는 구원론적 의미를 지닌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루터는 죄인에게서 일어나는 "놀라운 교환"(marvelous exchange)이라는 구원론적 사건을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속성간의 교류와 연결지어 이해하였다.
또한 철학자 J. G. 하만(J. G. Hamann)은 속성간의 교류가 그리스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행위에 일반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신적 속성과 인간적 속성의 이러한 교류는 모든 우리 지식과 전체 가시적 경제의 근본 법칙이자 열쇠"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하만 개인의 철학적 확장 해석으로, 교회의 정통 교리 자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루터의 속성간의 교류가 지나치게 신성 위주라는 점을 비판하면서 인성 중심의 속성간의 교류를 주장하였다. 그는 십자가가 그리스도가 변두리에 계신다는 그의 인성을 드러내지만, 바로 거기에서만 그리스도의 신성, 곧 그의 초월을 경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속성간의 교류는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론 연구와 기독론적 신학교육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초기 교회로부터 종교개혁 시기를 거쳐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교리적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