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昭顯世子, 1612년 2월 5일 ~ 1645년 5월 21일)는 조선 제16대 국왕 인조(仁祖)와 인열왕후 한씨의 장남이며, 효종(孝宗)의 형이다. 본명은 이왕(李𪶁)이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아버지 능양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입궁하였고, 1625년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전주로 피신하였으며, 같은 해 강석기의 딸(훗날 민회빈 강씨)과 혼인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으나, 이듬해 청나라에 항복한 후 조청화약(朝淸和約)에 따라 동생 봉림대군(훗날 효종)과 함께 청나라 심양(현 선양)에 인질로 볼모 생활을 하게 되었다. 1637년 4월부터 1645년까지 약 8년간 청나라에 억류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몽골어를 배우고 청나라의 서역 원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644년 청군이 명나라를 정벌할 때 도르곤(多爾袞)의 군대를 따라 베이징에 70여 일간 머물렀으며, 이때 독일 출신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Adam Schall, 탕약망)을 만나 천주교와 서양 과학 문물을 접하였다. 세자는 서양 문물을 조선에 도입하고자 하였으나, 반청 사상을 고수하던 인조와 조정 대신들은 이를 친청(親淸) 행위로 비난하며 냉대하였다.
1645년 2월 귀국한 지 약 3개월 후인 5월 21일(음력 4월 26일), 창경궁 환경당에서 갑자기 사망하였다. 사인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에 시신에서 검은 반점이 나타나고 이목구비에서 출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독살설이 제기되나, 《승정원일기》의 진료 기록을 근거로 폐렴 등 자연사 가능성을 주장하는 견해도 있어 현재까지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사후 인조는 소현세자의 장례를 간소화하였고, 세자빈 강씨는 인조 독살 미수 혐의로 1646년 사사(賜死)되었으며, 세 아들 중 둘은 제주도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셋째 아들 경안군(慶安君)만이 효종 즉위 후 복권되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고종 때에 이르러 세자로 복권되었고, 묘는 소경원(昭慶園)으로 격상되어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