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 귀화법(Sophia Naturalization Act 1705)은 1705년 잉글랜드 의회가 제정한 법률로, 하노버 선제후비(選定侯妃)인 팔츠의 소피아(Sophia of Hanover)와 그녀의 후손이 가톨릭 신자가 아닐 경우 잉글랜드 국민(영국 신민)으로 귀화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공식 명칭은 "가장 탁월한 하노버 선제후비 소피아와 그녀의 몸에서 난 후손의 귀화에 관한 법률(An Act for the Naturalization of the Most Excellent Princess Sophia, Electress and Duchess Dowager of Hanover, and the Issue of her Body)"이며, 인용 표기는 4 & 5 Ann. c. 16이다.
제정 배경으로는 1701년 왕위결정법(Act of Settlement 1701)에 따라, 잉글랜드의 앤 여왕에게 적법한 후계자가 없을 경우 개신교 신자인 소피아와 그녀의 개신교 후손이 왕위 계승권을 갖도록 정해진 데 있다. 소피아는 제임스 1세의 손녀로, 잉글랜드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잉글랜드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그녀와 "그녀의 몸에서 난 후손(the issue of her body)"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조건 하에 잉글랜드 신민으로 귀화시켜, 왕위 계승을 위한 법적 자격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소피아의 직계 후손 모두로 해석될 수 있었으며, 잉글랜드 및 웨일스 지역을 관할 범위로 하였다. 법의 시행일은 1705년 10월 25일, 왕실 승인일은 1705년 12월 21일이다. 소피아는 1714년 앤 여왕보다 약 두 달 먼저 사망하여 실제로 여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아들 게오르크(조지 1세)가 영국 왕위에 올랐다.
이 법은 이후 오랜 기간 잠정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다가, 1948년 영국 국적법(British Nationality Act 1948) 제34조 제3항에 의해 1949년 1월 1일자로 전체가 폐지되었다. 다만 폐지 이전에 출생한 소피아의 비(非)가톨릭 후손은 이미 자동적으로 영국 신민의 지위를 취득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폐지가 그들의 기존 지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 법에 따른 국적 주장이 실제로 시험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1947년 독일 시민권을 포기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자가 이 법에 따라 영국 국적을 주장한 사례가 있다. 또한 1955년부터 1957년까지 벌어진 Attorney-General v Prince Ernest Augustus of Hanover [1957] 1 All ER 49 사건에서, 하노버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왕자는 해당 법이 시행 중이던 시기에 개신교 신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이미 영국 국적을 취득하였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 밖에도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더 왕세자가 이 법에 따라 영국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 법에 따라 국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영국 해외 시민(British Overseas citizen)의 지위를 얻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피아 귀화법은 한국어권에서는 주로 영국 왕위 계승 및 영국 국적법의 역사적 맥락에서 언급되는 개념으로, 한글 위키백과 등에 별도의 문서로 정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