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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충자

소충자(蘇忠子)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활동한 인물로, 한자 표기는 蘇忠子이며 이칭으로 충지(忠至)라고도 한다. 경상남도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호족(豪族)이다.

개요

소충자는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후삼국 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김해 지역을 장악한 지방 세력가이다. 동생 소율희(蘇律熙)와 함께 기존에 김해 지역을 지배하던 호족 김인광(金仁匡)을 축출하고 진례성(進禮城, 현재의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일대)을 근거지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는 스스로 김해부지군부사(金海府知軍府事) 또는 성주장군(城主將軍)을 칭하였으며, 신라의 제3관등인 잡간(匝干)을 사용한 기록이 있어 신라 중앙의 진골 귀족 출신일 가능성도 제기되나, 당시 호족들이 관등을 자칭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활동 사항

소충자는 불심이 깊어 선종(禪宗) 계열의 고승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낭공대사 행적(行寂), 진철대사 이엄(利嚴), 진경대사 심희(審希) 등 당대의 이름 높은 선승들이 그의 후원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김해 지역은 선종의 요람지로서 명성을 떨쳤다. 이러한 사실들은 태자사 낭공대사탑비, 광조사 진철대사탑비, 봉림사 진경대사탑비 등의 금석문(金石文)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에 따르면 소충자의 부하 영규(英規)가 가야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의 제사권을 금관가야 왕실 후손으로부터 빼앗아 제사를 지내려 하였으나, 사당의 대들보가 무너져 깔려 죽는 등 일련의 신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소충자는 수로왕의 후손에게 제사권을 돌려주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는 소충자 세력과 금관가야계 토착 세력 간의 알력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해석된다.

세력의 소멸

911년(효공왕 11) 무렵 제작된 광조사 진철대사탑비와 봉림사 진경대사탑비에는 소충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고 동생 소율희의 이름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906~908년경 김해를 장악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거나 동생에게 세력을 넘겨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소율희(김율희)가 김해 지역의 호족으로 활동하였으나, 후백제의 견훤과 고려의 왕건이 경상도 일대에서 각축을 벌이던 920년대 중후반 무렵 세력이 몰락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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