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이(Шолой, 硕垒, 1577년~1655년)는 17세기 몽골 외할하부(外喀尔喀部)의 4대 아이막(aimag, 부족 연맹) 중 하나인 세첸칸부(塞臣汗部)의 초대 칸이다. 소로이 세첸 칸(Шолой сэцэн хан)으로도 불리며, 존칭은 마하 삼마디(Маха самади)이다.
소로이는 바투몽케 다얀 카안의 11번째 아들 게르센제의 증손으로, 게르센제의 넷째 아들 아민두라르의 손자이며 모로부임의 아들이다. 1624년 링단 칸에게서 도망쳐 온 아바가부와 수니드부의 왕공족들이 그를 마하사마디 게겐 세첸 칸(성스럽고 현명한 칸)으로 추대하였다. 1627년 형제 카르 자갈의 뒤를 이어 지배권을 승계하였고, 같은 해 링단 칸으로부터 자립을 선언하였다.
1635년 링단 칸이 사망하자 소로이는 전 몽골의 세첸 칸을 자처하며 몽골 칸국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였다. 그는 칭기즈 칸과 다얀 카안의 후손임을 내세우고, 자신의 부인 수무다라가 링단 칸의 카툰 양양태후와 자매 간임을 들어 양양태후와 에제이 칸에게 항복을 종용하였으나, 이들은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투항하였다.
소로이는 청나라에 대해 독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려 했으나 점차 청나라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1635년 청나라에 낙타를 조공으로 바쳤고, 1638년에는 청나라로부터 9백(九白, 흰 낙타 1마리와 흰 말 8마리)의 공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았다. 1646년 수니드부의 등지사를 시켜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키고 아들 분파이에게 3만 병력을 지원했으나 청나라 군대에 패배하였다. 1648년 등지사가 청나라에 항복한 후 소로이는 사신을 보내 낙타와 말 천 마리를 바치며 관계 개선을 시도하였고, 이후 순치제의 명으로 자제를 청나라에 입조시켰다.
1652년 연례 공물 수를 두고 청나라와 갈등을 빚다가 조공을 중단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청나라의 종속 세력으로 머물렀다. 1655년 사망하였으며, 그의 뒤는 넷째 아들 바부 세첸 칸이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