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파(蘇聯派, Soviet faction)는 해방 이후 소련 점령군과 함께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들어와 북한 정권과 정치 체제의 수립에 참여한 소련계 한인(고려인) 중심의 정치 세력을 가리킨다.
해방 직후 북한 내에는 빨치산파(김일성 중심), 연안파(중국延安 출신), 국내파(국내 공산주의자), 소련파 등 여러 파벌이 존재하였다. 소련파의 대부분은 소련에 귀화한 고려인으로, 소련군정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되어 북한 초기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소련군과 함께 입북한 시기에 따라 1진부터 5진까지 분류되었으며, 대표적 인물로는 허가이(허가이, 당부위원장), 박창옥, 박의완(내각부수상), 방학세(사회안전상), 남일(인민군 총참모장·외무상) 등이 있다.
소련파는 북한의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국가 체제 수립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초기에는 빨치산파의 김일성을 지원하며 권력의 실세로 존재하였다. 제2차 당 대회를 거치면서 중앙위원 수가 확대되어 빨치산파와 함께 연립정권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6.25전쟁) 기간 중 소련파의 최고 실력자였던 허가이가 당 조직 문제를 두고 김일성과 대립하였고, 1951년 허가이가 숙청된 것을 시작으로 소련파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1956년 8월 전원회의(8월 종파사건)에서 소련파 박창옥이 연안파 최창익 등과 함께 김일성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빨치산파의 즉각적인 역공에 부딪혀 대부분의 소련파 인사들이 숙청되었다. 8월 종파사건은 김일성의 1인 독재 체제를 공고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소련파는 국내에 뿌리가 없었고 소련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 정치 세력화에 한계가 있었으며, 실제로 1948년 말 소련군 철수 시 다수의 소련계 한인이 함께 귀국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