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냐 브라가(Sônia Braga, 본명: 소냐 마리아 캄포스 브라가, Sônia Maria Campos Braga)는 브라질의 배우이다. 1950년 6월 8일 브라질 파라나 주 마링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헬리우 페르난두 페라스 브라가와 어머니 마리아 브라가 자시 캄포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남매로 줄리우, 아나, 헬리우, 마리아가 있다. 조카인 앨리스 브라가(Alice Braga)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생애 초기 가족은 쿠리치바를 거쳐 상파울루 주 캄피나스로 이주했으며, 소냐 브라가가 여덟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한 뒤 상파울루의 수녀원 학교에 다녔다. 청소년기에는 상파울루의 웨딩 이벤트 업체에서 접수원 겸 타이피스트로 일하기도 했다.
데뷔와 브라질에서의 경력: 14세에 TV 투피(TV Tupi)의 어린이 프로그램과 텔레테아트로에 작은 역으로 출연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17세에 산투안드레에서 연극 《조르주 당댕》(George Dandin)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1968년에는 브라질 최초의 뮤지컬 《헤어》(Hair) 제작에 캐스팅되었으며, 이 공연은 브라질 군사독재 시기에도 3년간 상연되었다. 같은 해 영화 《오 반지두 다 루스 베르멜랴》(O Bandido da Luz Vermelha)에 출연했다.
1970년 레지 글로부(Rede Globo)의 텔레노벨라 《이르망스 코라젬》(Irmãos Coragem)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1972년 어린이 시리즈 《빌라 세사무》(Vila Sésamo)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1975년 조르지 아마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텔레노벨라 《가브리엘라》(Gabriela)에서 주인공을 맡아 국내외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섹스 심벌로 자리매김했다. 1976년에는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Dona Flor and Her Two Husbands)에서 주연을 맡아 브라질 극장가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국제 경력: 1985년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에서 윌리엄 허트, 라울 훌리아와 함께 출연하며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1988년 《문 오버 파라도르》(Moon over Parador)로 두 번째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다. 1987년에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선 브라질인이 되었다. 1994년 TV 영화 《버닝 시즌》(The Burning Season)으로 골든글로브와 에미상 후보에 각각 올랐다.
미국 생활과 이후 활동: 1980년대 후반 이후 미국으로 진출해 약 14년간 활동했으며, 200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코스비 쇼》, 《섹스 앤 더 시티》, 《앨리어스》, 《루크 케이지》 등 미국의 여러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1999년 브라질 텔레노벨라 《포르사 지 움 데세주》(Força de um Desejo)에 특별 출연하며 브라질 텔레비전에 복귀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아쿠아리우스》(Aquarius, 2016), 《바쿠라우》(Bacurau, 2019), 《파티마》(Fatima, 2020), 《퍼스트 오멘》(The First Omen, 2024)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2020년 《뉴욕 타임스》는 21세기 위대한 배우 25인 목록에서 그녀를 24위로 선정했다.
사생활: 배우 아르두이누 콜라산티와 1970년 결혼해 1976년 별거했고, 사진작가 안토니우 게헤이루와 1980년 결혼해 1988년 이혼했다. 1980년대에는 로버트 레드퍼드, 팻 메스니, 카에타누 벨로주 등과 교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로주는 그녀를 모델로 노래 《티그레사》(Tigresa)를 작곡했다. 2016년 인터뷰에서 자녀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언급하며 네 차례의 낙태 경험을 공개했다. 1990년부터 뉴욕에 거주하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니테로이에도 주거지를 두고 있다.
수상 및 후보 경력: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 3회(《거미 여인의 키스》, 《문 오버 파라도르》, 《버닝 시즌》), 에미상 후보 1회(《버닝 시즌》), BAFTA 여우주연상 후보 1회(《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가 있다. 브라질 그라마두 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