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군(小君)은 한국 역사와 한자어권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1. 고려 시대 왕실 용어 (小君)
가장 대표적인 용례는 고려시대에 왕의 서자(庶子), 즉 왕후 이외의 궁인(宮人)이나 폐첩(嬖妾)에게서 태어난 왕자를 일컫던 칭호이다. 고려 왕실에서는 왕비의 소생은 적자(嫡子)로, 궁인이나 폐첩의 소생은 서자(庶子)로 구분하였는데,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서자는 천인(賤人) 신분이었다. 이에 따라 이들은 출가(出家)시켜 승려가 되게 하였으며, 이렇게 승려가 된 왕서자를 소군이라 불렀다. 이는 이들의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실제로는 왕의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1196년(명종 26) 최충헌(崔忠獻)이 난을 일으켰을 때 소군과 궁희(宮姬) 몇 사람만이 명종을 곁에 모셨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이후 최충헌이 봉사십조(封事十條)를 올려 궁중에 머물며 정치에 간여하던 소군들을 본사(本寺)로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고려 현종(顯宗)은 즉위 전에 삼각산 신혈사(神穴寺)에서 출가하여 '신혈소군(神穴小君)'이라 불린 대표적인 사례이다.
2. 제후의 아내 (小君)
중국 고전에서 유래한 용법으로, 제후(諸侯)의 아내를 가리키는 호칭이다. 《논어》 등 유교 경전에서도 등장하는 표현이다.
3. 행정 구역 용어 (小郡)
면적이 좁고 호수(戶數)와 인구가 적은 군(郡)을 이르는 말로, 주로 한국과 중국의 지방 행정 구역 분류에서 사용되었다.
4. 왕소군(王昭君)의 약칭 (昭君)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 시기의 궁녀이자 흉노(匈奴)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의 연지(閼氏)였던 왕소군(王昭君, 본명 왕장(王嬙))을 줄여 '소군'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녀는 중국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며, 흉노와의 화친 정책으로 인해 한나라와 흉노 사이의 평화에 기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상의 용례들은 모두 한국과 중국의 역사 문헌 및 사전류에 공식적으로 등재되어 있는 의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