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역사 및 건립 배경 이 개선문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그의 두 아들 카라칼라, 게타의 파르티아 원정(194-195년 및 197-199년)에서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로마 원로원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원래 비문에는 세 명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었으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사후 카라칼라가 동생 게타를 살해하고 '기록말살형(damnatio memoriae)'을 선고한 후, 게타의 이름은 비문에서 삭제되고 그 자리에 카라칼라 자신을 찬양하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는 고대 로마의 정치적 숙청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건축 및 디자인 개선문은 총 세 개의 아치로 구성된 삼중 개선문(triple arch) 양식이며, 로마 개선문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좋은 편에 속한다. 중앙 아치가 가장 크고, 양옆에 작은 아치들이 있다. 전체 구조는 트라베르티노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기반 위에 흰색 프로코네소스 대리석(Proconnesian marble)으로 치장되었다. 개선문의 높이는 약 20.9미터, 너비 23.27미터, 깊이 11.2미터에 달한다.

조각 및 부조 개선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풍부하고 정교한 부조 장식이다. 이 부조들은 주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파르티아 원정의 주요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다.

  • 주요 패널 부조: 중앙 아치 위쪽에 위치한 네 개의 큰 패널 부조는 황제의 파르티아 원정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준다. 로마 군대의 행진, 적과의 전투, 도시의 포위 및 함락, 황제가 승리한 병사들에게 연설하는 장면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부조들은 당시 로마 예술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며, 이전 시대의 이상화된 묘사보다 사실적이고 서사적인 특징을 지닌다.
  • 작은 아치 위의 부조: 작은 아치 위쪽에는 승리 여신 빅토리아와 계절의 신들이 부조되어 있으며, 아치 내부 천장에는 카라칼라의 승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 기둥 및 기단: 코린트 양식의 기둥들은 포획된 야만인들을 묘사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으며, 개선문의 기단부에는 로마 군인의 행진과 관련한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비문 개선문의 상단부에는 거대한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와 그의 아들들이 "공화국을 보존하고 국민의 영토를 확장한" 것에 대해 원로원과 로마 인민이 헌정한 것임을 명시한다. 비문에 게타의 이름이 삭제된 흔적은 여전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사건의 증거로 남아 있다.

현존 및 의의 중세 시대에는 개선문의 일부가 주변 건물에 통합되기도 했으나,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오늘날 포로 로마노의 핵심 유적 중 하나로, 고대 로마의 건축 기술, 예술 양식, 그리고 정치적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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