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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주노마에

센주노마에(센쥬노마에, 일본어: 千手の前, 1165년~1188년 5월 23일)는 일본 헤이안 시대 말기의 여성이다.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에 따르면 스루가국(駿河国)의 테고시 나가모노(手越長者)의 딸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관녀(官女)가 되었다가 후에 호조 마사코(北条政子)의 뇨보(女房)가 되었다.

주에이 3년(1184년)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포로가 된 헤이케 측의 장수 다이라노 시게히라(平重衡)가 이즈국에 도착하자, 요리토모는 센주노마에를 비롯한 수행원들을 시게히라에게 보내 무료함을 달래게 하였다. 이 자리에서 시게히라와 센주노마에는 비파(琵琶)와 피리 등을 연주하며 시가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센주노마에는 포로 상태에 있던 시게히라를 곁에서 섬겼다.

겐랴쿠 2년(1185년) 단노우라 전투로 헤이케가 멸망한 뒤 시게히라는 처형되었고, 그로부터 3년 후인 분지 4년(1188년) 4월 25일, 센주노마에는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즈마카가미(吾妻鏡)》는 당시 가마쿠라 사람들이 센주노마에가 죽은 시게히라를 연모한 끝에 병을 얻어 죽은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기록한다. 한편 《헤이케모노가타리》의 다른 구절에서는 그녀가 출가하여 시나노국 젠코지(善光寺)에 들어가 시게히라의 명복을 빌었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는 훗날 노(能)의 연목(演目) 《센쥬(千手)》의 소재가 되었으며, 시즈오카시 스루가구 테고시(手越)에 있는 쇼쇼이 신사(少将井神社)에는 센주노마에의 상이 남아 있다. 다만 《헤이케모노가타리》나 《아즈마카가미》는 후대의 문학적 조작이 많아, 실제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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