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레)는 베트남 후 레 왕조(後黎王朝)의 제15대 황제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베트남어로는 레 테 똥(Lê Thế Tông)이며, 한자 묘호는 世宗(세종)이다. 본명은 레 주이 담(Lê Duy Đàm, 黎維潭, 여유담)이다.
개요
세종은 1567년에 태어났으며, 재위 기간은 1573년부터 1599년까지였다. 그는 영종(英宗) 여유방(Lê Duy Bang)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시호는 의황제(毅皇帝)이며, 능호는 화악릉(華岳陵)이다. 연호로는 가태(嘉泰, 1573~1577)와 광흥(光興, 1578~1599)을 사용하였다.
생애
1572년, 부친인 영종이 권신 찐뚱(Trịnh Tùng)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폐위된 뒤 살해되었다. 이후 찐뚱은 당시 6세였던 세종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이로부터 세종의 치세는 정씨 일가의 실질적인 통제 아래 이루어졌다.
1592년, 찐뚱이 막 왕조(莫朝)를 공격하여 패배시키고 동도(東都)인 탕롱(昇龍)을 탈환하였다. 이로써 후 레 왕조는 명목상으로 대월을 통일하게 되었으나, 실제로는 조정이 찐 주(鄭主)에게 장악되어 있었고, 남부의 투언호아(順化) 지역은 응우옌 주(阮主)가 통제하고 있었다. 막 왕조의 잔여 세력은 까오방(高平) 일대에 웅거하며 저항을 이어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찐-응우옌 분쟁(鄭阮紛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599년, 세종은 3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뒤는 둘째 아들인 경종(敬宗) 레 주이 떤(Lê Duy Tân)이 이어받았다.
가계
세종의 비(妃)로는 의덕황태후(懿德皇太后) 응우옌 티 응옥띠엔(Nguyễn Thị Ngọc Tiên, 阮氏玉仙)이 있으며, 아들로는 장남 레 주이 찌(Lê Duy Trì)와 차남 레 주이 떤(Lê Duy Tân, 후대의 경종)이 있었다.
역사적 의의
세종의 치세는 후 레 왕조가 막 왕조를 멸망시키고 명목상의 재통일을 이루었으나, 동시에 찐·응우옌 양 가문의 분할 통치 체제가 공고화된 시기로 평가된다. 세종 본인은 유년기에 즉위하여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한 상징적 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