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그리스어: Σειρήν, Seirḗn, 영어: Siren)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의 생물이다. 감미로운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선원들을 유혹하여 난파시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어원
고대 그리스어 '세이렌(σειρήν)'의 어원은 학계에서 여러 가설이 공존하며 확정된 단일 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줄, 끈'을 뜻하는 '세이라(σειρά)'와의 연관성을 통해 '휘감는 자, 묶는 자'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견해가 제시되어 왔다. 현대어에서 경보기를 뜻하는 '사이렌(siren)'은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계보와 외형
세이렌의 계보는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강의 신 아켈로오스(Achelous)와 뮤즈(Mousa) 중 멜포메네(Melpomene) 또는 테르프시코레(Terpsichore)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로 전해지며, 그 수는 세 명(파르테노페·레우코시아·리기아 등) 또는 네 명으로 전승된다.
고대 그리스 미술과 문헌에서 세이렌은 여성의 머리와 상반신, 새의 몸과 날개를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하피(Harpy)와 형태상 유사하여 혼동되기도 하였다. 중세 이후로는 점차 아름다운 여성의 상반신과 물고기 꼬리를 지닌 반인반어(半人半魚), 즉 인어(mermaid)의 모습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하였다.
신화적 전승
세이렌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디세이아》(Odysseia)에 등장한다.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마녀 키르케(Kirke)의 조언에 따라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배의 돛대에 몸을 단단히 묶은 채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다. 세이렌의 노래는 듣는 자에게 온갖 지식과 쾌락을 약속하며 유혹하였으나, 오디세우스는 몸이 묶여 있어 배를 돌릴 수 없었고 그 결과 무사히 섬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이에 모욕감을 느낀 세이렌들은 바다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아르고 호(Argo) 원정대가 세이렌의 섬을 지날 때, 뛰어난 음악가 오르페우스(Orpheus)가 리라를 연주하여 세이렌의 노래를 압도함으로써 선원들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서는 세이렌이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시종이었다가, 페르세포네가 하데스(Hades)에게 납치된 후 그녀를 찾아 헤매던 중 신들에게 날개를 달아달라고 기도하여 새의 모습을 얻었다는 다른 기원 이야기를 전한다.
상징과 문화적 영향
세이렌은 고대 그리스에서 바다의 위험과 유혹의 위험성을 의인화한 존재로 이해되었다. 이후 서양 문화 전반에서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유혹'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문학과 예술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되어 왔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bert James Draper) 등 19세기 화가들의 작품에서 세이렌은 주요 소재로 다루어졌다.
현대에 이르러 세이렌의 이미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스타벅스(Starbucks)의 로고는 쌍꼬리 인어 형태의 세이렌을 모티브로 하였으며, 해양 포유류인 매너티(manatee)와 듀공(dugong)을 포함하는 바다소목(Sirenia)의 학명 역시 세이렌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경보 장치를 뜻하는 '사이렌(siren)'이라는 용어도 이 신화적 존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동아시아 불교 문화권의 가릉빈가(迦陵頻伽, Kalaviṅka)와 슬라브 신화의 알코노스트(Alkonost)도 아름다운 노래를 지닌 반인반조의 존재라는 점에서 세이렌과 유사성이 지적되나, 가릉빈가는 극락에 사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