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은 조선시대 왕세손(王世孫)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이다. '강서원(講書院)'이라고도 불렸다.
설치 시기와 성격
세손강서원은 상설기관이 아니라 왕세손이 책봉될 때마다 필요에 따라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강서원이 설치된 주요 시기는 1448년(세종 30), 1649년(인조 27), 1751년(영조 27), 1759년(영조 35), 1829년(순조 29) 등이다. 이 시기들은 각각 단종, 현종, 의소세손, 정조, 헌종이 왕세손으로 책봉되기 전후에 해당한다. 최초 설치는 1448년 3월 21일로, 당시 원손(元孫)이던 단종의 세손 책봉이 4월 3일로 예정되어 있어 미리 강서원이 설치되었다. 왕세손이 왕세자로 책봉되면 세손강서원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으로 대체되었다.
조직과 관원
『속대전(續大典)』에 따르면 세손강서원의 관원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사(師): 종1품, 1인, 겸직
- 부(傅): 종1품, 1인, 겸직
- 좌·우유선(左右諭善): 당하 정3품~종2품, 각 1인
- 좌·우익선(左右翊善): 종4품, 각 1인
- 좌·우권독(左右勸讀): 종5품, 각 1인
- 좌·우찬독(左右贊讀): 종6품, 각 1인
총 10명의 관원이 배속되었으며, 이 중 사와 부는 겸직이었고 나머지는 전임 관료였다. 이속(吏屬)으로 서리 6명, 사령 6명, 수공(水工) 1명이 있었다. 세손강서원은 정3품 아문(衙門)으로 분류되었다.
역사적 변천
세종 때 처음 설치된 강서원의 관원은 집현전 관리들이 겸직하였으나, 인조 때에는 집현전이 폐지된 이후였으므로 홍문관 관원이 겸임하였다. 영조 때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1750년 의소세손을 위해 강서원을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세손사(世孫師)와 세손부(世孫傅)를 두었고, 1759년 정조를 위해 강서원을 설치하면서 좌·우유선과 좌·우권독을 추가 배치하여 세손 교육을 강화하였다. 이로써 세손강서원은 정3품 아문으로 격상되었다.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는 종4품 우익선과 종6품 우찬독이 겸직관으로 바뀌었고,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도 이 체제가 유지되었다.
대한제국기 이후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보양청이 시강원과 통합되었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후 1903년(광무 7)에는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독립하였으며, 일강관(日講官) 2인, 유덕(諭德) 1인, 부유덕(副諭德) 1인, 찬독 2인, 위종(衛從) 6인 등이 배속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황태손강서원도 함께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 『증보문헌비고』, 『강서원일록』, 『정조강서원일기』 등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