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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소콜로프 (원수)

세르게이 레오니도비치 소콜로프(러시아어: Серге́й Леони́дович Соколо́в, 1911년 7월 1일 ~ 2012년 8월 31일)는 소련의 군인으로, 소비에트 연방 원수(Marshal of the Soviet Union)이자 소련 국방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생애 초기

소콜로프는 1911년 7월 1일 러시아 제국(현재의 크림반도) 예브파토리야에서 제정 러시아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러시아 혁명 이후 가족과 함께 뱌트카 주 코텔니치로 이주하였으며, 1932년 붉은 군대에 입대하여 고리키 기갑학교를 졸업하였다. 극동 지역에서 복무하며 하산호 전투(소련-일본 국경 분쟁)에 참전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독소전쟁)에서도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다.

군사 경력

전후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을 지냈고, 1967년부터 1984년까지 소련 국방부 제1차관을 역임하였다. 1978년 소비에트 연방 원수로 승진하였다. 1979년 12월 27일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지상군을 직접 지휘하였으며, 이 전쟁에서의 지휘와 전략 수행으로 소련군 원수들 중에서도 높은 존경을 받았다. 1980년 4월 28일 소련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국방장관 시절

1984년 12월 22일 드미트리 우스티노프의 뒤를 이어 소련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1985년부터 1987년까지는 정치국 후보 위원(의결권 없음)을 겸하였다. 그러나 1987년 5월 28일 서독의 아마추어 조종사 마티아스 루스트가 소련 방공망을 뚫고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 경비행기를 착륙시킨 사건(루스트 사건)의 책임을 지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에 의해 국방장관직에서 해임되었다.

말년

해임 이후 1987년 6월부터 1989년 7월까지 감찰관단(Group of Inspectors General)의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독립국가연합(CIS) 합동군 총사령관 고문을 거쳐 1992년부터 러시아 연방 국방장관 고문을 지냈다. 2001년 7월 크림반도의 명예 시민이 되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모스크바 전쟁 및 군대 재향군인회관에서 군 재향군인 클럽을 이끌었다.

2012년 8월 31일 모스크바에서 향년 101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부인 마리야 사모일로브나 소콜로바(1919~2012)가 3일 전에 먼저 사망하였으며, 소콜로프는 9월 3일 모스크바 노보데비치 묘지에 군례와 함께 안장되었다. 소콜로프는 소련 원수들 중 가장 장수한 인물로 기록되었다.

가족

두 아들을 두었으며, 두 아들 모두 소련군 대장(Colonel-General) 계급에 올랐다. 장남 발레리 세르게예비치 소콜로프(1940년생)는 참모본부 군사사관학교 교수로 활동하였고, 차남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소콜로프(1947년생)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40군 참모장을 지냈다.

주요 훈장 및 서훈

소련 영웅(1980년), 레닌 훈장 3회, 적기 훈장 2회, 수보로프 1급 훈장, 조국 전쟁 1급 훈장, 적성 훈장 2회 등 다수의 소련 훈장을 수훈하였다. 또한 러시아 연방에서는 조국 공로 훈장 2·3·4급, 주코프 훈장을 받았으며, 아프가니스탄, 불가리아, 헝가리, 베트남, 동독, 몽골,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핀란드, 쿠바, 북한, 요르단 등 여러 국가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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