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누시야(아랍어: السنوسية 앗사누시야, 영어: Senussi Order)는 리비아의 수니파 수피 종단이자,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북아프리카와 사헬 지역에서 활동한 종교적·정치적·군사적 조직이다. 1837년 메카에서 알제리 모스타가넴 출신의 무함마드 이븐 알리 앗세누시(1787~1860)에 의해 창설되었다. 앗세누시는 이슬람 신학과 세속 권력의 쇠퇴를 개탄하며, 쿠란과 순나를 엄격히 따르는 수피 개혁 운동을 추진하였고, 성인 숭배와 같은 관행을 배격하였다.
앗세누시는 1843년 리비아 동부 키레나이카(바르카) 지역으로 돌아와 '자위야 바이다'(하얀 수도원)를 세웠고, 이를 거점으로 세누시야 세력이 형성되었다. 세누시 수사들은 이슬람 법의 테두리 내에서 자족적인 생활을 영위하였으며, 베두인 부족들의 지지를 얻어 영향력을 확장하였다. 세누시야의 영향력은 리비아에서 차드호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미쳤으며, 와다이 술탄국 등과 동맹 관계를 맺었다.
1902년부터 1913년까지 세누시야는 차드에서 프랑스, 리비아에서 이탈리아와 교전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오스만 제국과 동맹하여 이집트와 수단의 영국군과도 싸웠다. 1923년부터는 오마르 무크타르의 활약과 함께 이탈리아에 대한 독립 투쟁을 주도하였으나, 1931년 오마르 무크타르의 체포와 처형, 그리고 이탈리아군의 강제 이주 및 화학무기 사용 등으로 인해 정치적 세력으로서의 세누시야는 1932년경 사실상 소멸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세누시야는 영국 제8군과 협력하여 추축군에 맞섰다. 전후인 1951년, 앗세누시의 손자 무함마드 이드리스 앗세누시가 이드리스 1세로 즉위하면서 리비아 왕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의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되었고, 세누시 종단은 카다피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2011년 카다피 정권 붕괴 이후 세누시야는 다시 주목받았으며, 특히 키레나이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2014년에는 세누시 인사들에 대한 복권이 이루어졌고, 입헌군주제 회복 논의가 진행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