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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읍성

성주읍성(星州邑城)은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예산리·백전리 일대에 있었던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존속한 읍성(邑城)이다. 읍성이란 지방 행정 중심지인 읍(邑)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성곽을 말한다.

건립 경위

성주읍성의 최초 축성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의 기록에 따르면 1380년(고려 우왕 6)에 토성(土城)으로 축조되었고, 1520년(조선 중종 15)에 석성(石城)으로 개축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인 1591년(선조 24)에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지방 읍성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과정에서 성주읍성도 재정비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성주읍성은 일본군에게 점령되었으나, 성주목사 제말(諸沫)을 비롯한 의병들이 성주성 전투를 벌여 탈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와 형태

성주읍성은 성주군 성주읍의 중심지 일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약 4㎞ 떨어진 인현산(印懸山, 해발 185m)을 진산(鎭山)으로, 남동쪽으로 약 3㎞ 떨어진 성산(星山, 해발 383.4m)을 안산(案山)으로 삼아 나즈막한 구릉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 내에 설치되었다. 성곽의 형태는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으로, 조선 시대 고지도에 나타난 모습은 원형 또는 타원형이다. 『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에는 읍성의 둘레가 약 6,755척(약 2.05㎞)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높이는 약 2.7m로 추정된다. 읍성에는 동·서·남·북의 사대문이 있었으며, 성내에는 객사(客舍), 동헌(東軒), 아사(衙舍) 등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경산지』에는 동·서·북 3문으로 기록된 반면, 『성산지』와 『성주목읍지』에는 4문으로 기록되어 있어, 18세기 이후에 남문이 추가로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훼손과 소실

성주읍성은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며 건립과 소실을 반복하다가,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문이 소실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신작로 개설과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대부분의 성벽이 허물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랫동안 그 터만 남아 있었다.

발굴 조사와 복원

2002년에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성주읍성에 대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고, 2009년 6월부터 9월까지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이 서쪽 성벽에 대한 발굴 조사를 수행하였다. 이후 성주군의 역사 테마 공원 조성 사업에 따라 조선 전기 4대 사고(史庫) 중 하나인 성주사고(星州史庫), 조선 시대 전통 연못인 쌍도정(雙島亭), 그리고 성주읍성의 북문인 성지문(星智門)과 성벽이 복원·정비되었다. 2020년 10월에 성주역사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일반에 공개되었으며, 현재 성주읍성은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성주읍성의 성곽 규모와 원형은 고문헌의 기록, 고지도, 그리고 일부 시행된 문화유산 조사를 통해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원형 복원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학술 조사와 체계적인 종합 정비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군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관광 명소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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