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저오리정계석표(城底五里定界石標)는 조선 전기 한성부(漢城府)의 관할 구역 경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이 단어는 실제로 존재하는 역사적 유물의 명칭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 등 공신력 있는 자료에 등재되어 있다.
개요
성저오리정계석표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일대에 있었던 조선 전기의 석비(石碑)이다. '성저오리'란 한양도성(漢陽都城)으로부터 5리(약 2km) 지점을 의미하며, '정계'는 경계를 정한다는 뜻이다. 즉 이 비석은 도성에서 5리 되는 지점에 한성부의 관할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건립 시기
비석의 정면에는 '성저오리정계입표경인3월일(城底五里定界立標庚寅三月日)'이라는 기록이 새겨져 있다. 이 기록에 근거하여 건립 연대는 1410년(태종 10년)으로 추정된다. 다만 정확한 건립 연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으며, 추정에 기반한 것이다.
역사적 배경
조선 전기 한성부의 관할 구역은 도성으로부터 사방 10리(성저십리)까지로 정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한성부의 관할 구역은 동쪽으로 양주 송계원과 대현, 서쪽으로 양화도와 고양 덕수원, 남쪽으로 한강과 노도, 북쪽으로 북한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관할 구역의 중간 지점인 도성으로부터 5리 되는 곳에 성저오리정계석표가 세워졌다.
조선 전기에는 많은 방명표(坊名標)와 정계표가 세워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성저오리정계석표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 지정 및 이전
성저오리정계석표는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110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1970년 10월 30일, 문화재 위치 이전으로 인해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손상되었다고 인정되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같은 해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이 이 표석을 경복궁으로 옮겼으며, 원래 자리에는 시멘트로 된 유지표(遺址標)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유지표도 사라진 상태이다. 이후 1995년 10월 성북구에서 원래 위치에 표석을 다시 세웠다.
현재 성저오리정계석표 실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2026년 서울역사박물관의 기획전시 '한성부입니다'에서 경복궁으로 옮겨진 후 약 56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바 있다.
비석의 규격
비석의 크기는 높이 약 76cm, 너비 약 42cm, 두께 약 24cm이다.
관련 개념
성저오리정계석표는 조선시대 한성부의 행정 구역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성부는 도성 안의 5부(五部)와 도성 밖의 성저십리(城底十里) 지역을 관할하였으며, 성저오리는 그 중간 지점에 해당한다. 이 비석은 조선 전기 한성부의 관할 범위와 행정 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