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成宜, ?~211년)는 중국 후한 말기 서량(西涼) 지역의 장수이다. 출신지와 정확한 생년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사망 시기는 211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애
후한 말기, 서량 일대에서 활동하던 군벌 출신의 장수였다. 211년, 마초(馬超)와 한수(韓遂)가 조조(曹操)가 자신들을 공격할 것을 의심하여 대군을 일으켜 조조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 성의는 후선(侯選), 정은(程銀), 이감(李堪), 장횡(張橫), 양추(梁秋), 양흥(梁興), 마완(馬玩) 등 서량의 다른 장수들과 함께 이에 호응하여 반조조 연합군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연합군 내부에서 마초가 한수를 의심하게 되면서 서량군의 결속이 무너졌고, 이러한 혼란을 포착한 조조가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성의는 이 전투에서 조조군과 싸우다 전사하거나,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감과 함께 붙잡혀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사료에 따라 묘사가 다소 다르게 전해진다.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성의가 한수의 부하 장수로 등장하며, 한수의 수하 팔부(八部) 중 한 명으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 성의는 마초의 명령에 따라 군사 30기를 이끌고 조조군의 진영을 정찰하던 중, 조조군이 보이지 않자 안심하고 진영 안으로 들어갔다가 미리 매복해 있던 조조군에게 포위되었고, 결국 하후연(夏侯淵)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기록의 한계
성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다. 정사(正史)에서의 그의 활동은 211년 반조조 연합군 참전과 그 과정에서의 사망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이전의 생애나 가계, 군사적 행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정보는 《삼국지연의》의 문학적 묘사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실제 역사적 인물로서의 면모와 소설 속 인물로서의 묘사를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