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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

성리학(性理學)은 12세기 남송(南宋)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학의 주류 학파이다. '성리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성명·의리의 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며, 정이(程頤)가 주창한 '성즉리(性卽理)'에서 비롯되었다. 성리학은 주자학(朱子學), 정주학(程朱學), 이학(理學), 도학(道學), 신유학(新儒學), 송명이학(宋明理學) 등의 명칭으로도 통용된다.

기원과 형성

성리학은 중국 송(宋)대에 들어와 공자와 맹자의 유교 사상을 '성리(性理)·의리(義理)·이기(理氣)' 등의 형이상학 체계로 해석한 학문이다. 주희는 주렴계(周濂溪, 주돈이), 장횡거(張橫渠, 장재), 정명도(程明道, 정호), 정이천(程伊川, 정이)의 학문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성리학은 도교와 불교를 '실질이 없는 공허한 교설(虛無寂滅之敎)'이라고 비판하며 배척하였고, 가족을 중심으로 한 혈연 공동체와 국가를 중심으로 한 사회 공동체의 윤리 규범을 제시하였다.

핵심 개념

성리학의 핵심 개념은 이(理)와 기(氣)이다. '이'는 형태가 없고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본 원리이자 순수한 도덕 법칙이며, '기'는 구체적인 현상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이다. 이와 기는 성격상 다른 것(不相雜)이면서도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不相離)에 있다고 본다. 또한 마음(心), 성(性), 정(情)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해석하여, 마음이 성과 정 전체를 아우른다(心統性情)고 보았다. 인간의 본성(性)은 우주의 보편타당한 법칙(天理)을 부여받은 것으로 본질적으로 선(善)하다고 신뢰하였으며, 자신의 기질(氣質)을 교정하면 선한 본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수양론

성리학의 수양 방법으로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통한 궁리진성(窮理盡性)이 강조되었다. 즉 사사물물(事事物物)에 깃들어 있는 이치(理)를 궁구하여 인간의 앎을 확장하는 것이다. 또한 자기 자신의 마음을 항상 반성적으로 살피고(存心), 본성을 기르며(養性),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를 신중히 하는 것(愼獨·戒懼) 등이 중시되었다.

한국에서의 전개

성리학이 한국에 전래된 시기는 고려 인종기 전후(11~12세기)로 추정되며, 주자학으로서의 본격적 도입은 충렬왕 때(13세기 후반) 안향(安珦)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 성리학은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조선 초기에는 정도전(鄭道傳)과 권근(權近)이 성리학을 중심으로 국가 체제를 확립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데 앞장섰다.

16세기 이후 한국 성리학은 이론적으로 심화되어 이언적(李彦迪), 서경덕(徐敬德), 이황(李滉, 퇴계), 기대승(奇大升), 이이(李珥, 율곡) 등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변,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론, 그리고 18세기 호락논쟁(湖洛論爭)으로 이어지는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 등은 한국 성리학의 독자적이고 심오한 이론 발전을 보여준다.

한국 성리학의 특징으로는 정주학의 절대 우위, 주지주의(主知主義)적 경향, 예학(禮學)의 발달, 주리론(主理論)의 우세, 인존정신(人尊精神)의 지향 등이 꼽힌다. 조선 말기에는 이항로(李恒老) 등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 성리학자들이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영향

성리학은 중국 원(元)·명(明)·청(淸)을 거쳐 관학적 아카데미즘의 주류를 형성하였으며, 한국과 일본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500여 년간 정치, 사회, 교육, 윤리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사상 체계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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