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단용(城旦舂)은 중국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시기에 시행된 노역형(勞役刑)의 일종이다. 이 용어는 주로 출토된 죽간(竹簡) 자료, 특히 수호지진간(睡虎地秦墓竹簡)과 장가산한간(張家山漢墓竹簡) 등의 고문헌을 통해 학계에 알려져 있으며, 한국의 중국 고대사 연구 논문에서도 관련 키워드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 및 의미
'성단용'은 한자어 '城旦舂'을 한국어로 읽은 것이다. '성단(城旦)'은 남자 죄수가 새벽(旦)에 일어나 성(城)을 쌓는 노역을 하는 것을 의미하고, '용(舂)'은 여자 죄수가 절구에 곡식을 찧는 노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인의 성별에 따라 노역의 내용이 구분되었으나, 실제로는 반드시筑城(축성)이나 舂米(방미)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관부 노동에 동원되었다.
역사적 배경
진한대 형벌 체계에서 성단용은 가장 널리 적용된 노역형 가운데 하나였다. 한문제(漢文帝) 13년(기원전 167년)의 형법개혁 이전에는 원칙적으로 무기형(無期刑)이었으나, 개혁 이후 유기형(有期刑)으로 전환되어 최고 6년의 형기(刑期)가 적용되었다. 또한 성단용은 경형(黥刑, 얼굴에 먹물을 새기는 형벌)이나 참형(斬刑, 신체 일부를 자르는 형벌) 등의 육형(肉刑)과 결합되어 '경위성단용(黥爲城旦舂)', '찬좌지위성단(斬左止爲城旦)' 등 다양한 등급으로 나뉘어 적용되었다.
학술적 의의
성단용은 진한대 법률 체계와 노동력 운용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국가는 성단용에 처해진 도예(徒隸, 노역형 죄수)를 각 관부에 배속하여 토목 공사, 행정 잡무, 수공업 생산, 수렵·채집 등 다양한 분야의 노동력으로 활용하였다. 이에 관한 연구는 『이야진간(里耶秦簡)』의 '작도부(作徒簿)' 등의 출토 자료를 바탕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