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모(纖毛, cilium, 복수형 cilia)는 진핵세포의 세포막이 짧은 털이나 가느다란 실 모양으로 돌출된 세포소기관이다. 라틴어 'cilium'(속눈썹)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영어와 학술용어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미세소관이중체(doublet) 아홉 가닥(9×2)이 세포체에서 뻗어 나와 축(axoneme)을 이루며, 축을 안쪽에서 지탱하는 것이 구조적 특징이다. 섬모는 진화적으로 강하게 보존된 구조로, 종에 따라 운동, 감각, 발생, 항상성 유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역사
섬모는 1674~1675년경 네덜란드의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현미경 관찰을 통해 처음 기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섬모'라는 명칭은 1786년 덴마크의 오토 프리드리히 뮐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세포에 하나 또는 몇 개만 존재하면 '편모', 여러 개가 존재하면 '섬모'로 구분하는 용례가 정립되었다.
구조
섬모는 미세소관이중체 아홉 가닥이 원형으로 배열된 축(axoneme)을 기본 구조로 한다. 축의 형태에 따라 중앙에 미세소관 단일체 두 가닥이 존재하는 9+2 구조와 존재하지 않는 9+0 구조로 구분된다. 축의 밑동에는 바닥소체(basal body)라고 하는 변형된 중심립이 있으며, 바닥소체가 세포막에 도킹하여 섬모형성(ciliogenesis)이 시작된다. 바닥소체와 축의 경계에는 이행구역(transition zone)이 있어 섬모와 세포체 사이의 물질 수송을 조절하며, 이를 '섬모문(ciliary gate)'이라고도 부른다. 이행구역의 섬모막에는 특이적인 단백질과 지질이 집중되어 있어 섬모가 외부 신호를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분류
섬모는 운동성에 따라 운동성 섬모(motile cilia)와 비운동성 섬모(non-motile cilia)로, 구조적으로는 9+2 구조와 9+0 구조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운동성 섬모는 9+2 구조이고 비운동성 섬모는 9+0 구조이지만, 예외가 존재한다. 속귀 털세포처럼 9+2 구조이면서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배아 원시결절의 결절섬모(nodal cilia)처럼 9+0 구조이면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운동성 섬모는 대체로 세포 하나에 다수가 존재하는 반면, 일차섬모(primary cilium)라고 불리는 비운동성 섬모는 세포당 하나가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후각세포처럼 비운동성 섬모가 수십 개 존재하는 반례도 있다.
운동성 섬모와 운동 기전
운동성 섬모의 축을 이루는 미세소관이중체는 디네인(dynein)이라는 분자 모터 단백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디네인 팔(dynein arm)이 ATP를 소모하여 힘을 생성하면 미세소관이중체가 서로 미끄러지며 상대 운동을 일으키고, 이 힘이 섬모의 휘어지고 펴지는 박동으로 전환된다. 이때 넥신(nexin)이라는 단백질이 이웃한 이중체를 연결하여 미끄러짐이 굽힘 운동으로 변환되도록 한다. 또한 부챗살(radial spoke)이라는 구조가 디네인의 힘을 나선운동이 아닌 평면적 박동운동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운동성 섬모는 다양한 생리적 기능을 담당한다. 기관(氣管) 상피 세포에는 세포당 약 200개의 운동성 섬모가 있으며, 점액을 폐로부터 밀어 올려 이물질과 병원체를 제거하는 점액 섬모 청소(mucociliary clearance) 기능을 수행한다. 뇌실막 세포의 운동성 섬모는 뇌실계에서 뇌척수액 순환을 추동하며, 포유류 암컷의 나팔관에 있는 운동성 섬모는 난자가 난소에서 자궁으로 이동하도록 돕는다. 정자와 각종 원생동물에 존재하는 편모 역시 9+2 구조와 분자 구성을 공유하므로 넓은 의미에서 운동성 섬모에 해당한다.
일차섬모와 감각 기능
동물세포 대다수는 9+0 구조의 비운동성 일차섬모를 하나씩 가진다. 일차섬모는 1898년에 발견되었으나 한 세기 동안 대부분 무시되었고 기능이 없는 흔적 기관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일차섬모가 화학 감각, 신호 전달, 세포 성장 제어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오늘날에는 세포 외부 환경의 화학물질, 온도, 기계적 자극을 감지하는 일종의 '세포 안테나' 또는 '감시탑'으로 비유된다. 일차섬모는 헤지호그(hedgehog) 신호 전달 경로 등 다양한 신호전달 과정에 관여하며, 세포주기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G1기에 조립되고 세포분열 전에 분해된다.
섬모병증
섬모의 구조 또는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을 통틀어 섬모병증(ciliopathy)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다낭콩팥병(PKD), 원발성 섬모 이상운동증(PCD), 바르데-비들 증후군(BBS), 메켈-그루버 증후군 등이 있다. 원발성 섬모 이상운동증은 운동성 섬모에 이상이 생기는 유전성 질환으로, 좌우 비대칭성 이상, 불임, 만성 호흡기 감염 등의 임상 양상을 보인다. 일차섬모의 결함은 제2형 당뇨병, 비만 등 대사 질환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결절섬모와 좌우 비대칭
배아 발생 초기에 나타나는 원시결절을 이루는 세포들은 9+0 구조의 운동성 섬모를 하나씩 가지는데, 이를 결절섬모(nodal cilia)라고 한다. 가운데 미세소관 쌍과 부챗살이 없으므로 디네인 팔의 움직임이 평면 박동이 아닌 회전운동으로 전환되어, 배아외액이 원시결절을 왼쪽 방향으로 흐르게 한다. 이 흐름은 배아의 좌우 비대칭을 형성하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타 관련 구조
속귀 털세포에는 '고정섬모(stereocilia)'라는 구조가 존재하나, 이는 미세소관으로 이루어진 섬모와 달리 액틴 미세섬유로 구성되어 있어 엄밀히는 미세융모 및 사상족과 유사한 분류에 속한다. 한편 속귀 털세포의 '운동섬모(kinocilium)'는 명칭과 달리 실제로는 자발적인 운동 능력이 없는 특수한 일차섬모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