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설성 김씨

설성 김씨(雪城金氏)는 대체로 한반도의 두 지역이 '설성'(雪城)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역사적 배경과 관련하여, 개성(開城)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분류된다. 다만, '설성'이라는 지명이 충청북도 음성군 일대의 옛 지명으로도 쓰였던 탓에, 관련 문헌에 따라 관향의 해석에 차이가 나타난다.

개요

설성 김씨는 한국의 성씨 가운데 하나로, 시조는 고려 시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낸 김지선(金芝宣, 또는 金之宣)이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기준 인구는 2,162명으로 파악된다. 설성 김씨는 개성 김씨(開城金氏)에서 분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조 김지선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예로 전해진다.

시조와 세계

설성 김씨의 시조 김지선은 신라 경순왕의 다섯째 아들인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후손으로서, 개성 김씨의 시조인 김용주(金龍珠)의 증손자라고 전해진다. 문헌에 따르면 김지선은 고려 때 보문각 대제학을 지내고 개성 지역에 세거하면서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고,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아 개성 김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설성(雪城)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설성 김씨의 본격적인 족보 수보(修譜)는 1781년에 최초로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설성'의 지명적 의미

'설성'(雪城)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문헌마다 상이한 설명이 존재한다.

《설성김씨대종보》에 따르면, 개성의 별호가 설성인 이유는 고려가 도읍을 세울 때 성을 쌓을 자리를 아직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해 여름 밤 성(城)처럼 눈이 내려 쌓였고, 그 눈이 쌓인 형상 그대로 성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하는 설화가 전한다. 《동국여지비고》에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인용하여, 한양에 외성을 쌓으려 할 때 하룻밤 사이에 눈이 와서 밖은 쌓이고 안은 녹자 태조가 눈에 따라 성터를 정하여 '설성'이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설성'은 충청북도 음성군과 경기도 이천군 일부 지역에 걸쳐 있던 옛 지명의 다른 이름으로도 쓰였다. 해당 지역은 백제 때 잉홀현(仍忽縣), 고구려 때 노음죽현(奴音竹縣)으로 불렸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음성현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자료에서는 설성 김씨의 본관 소재지를 충청북도 음성 지역으로 기술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련 항목과 위키백과 등에서는 설성 김씨의 관향을 경기도 개성으로 보고 있으며, 《증보문헌비고》에는 설성 김씨 관향의 읍속(邑屬)을 상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개성 김씨와의 관계

설성 김씨와 개성 김씨는 조상이 동일한 경우가 있어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19세기 말에 간행된 《의역주팔세보》 등을 살펴보면, 개성 김씨의 후손이 스스로를 설성 김씨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확인되며, 조선 후기 개성 출신의 유명 화가 대부분이 설성 김씨에 속하기도 하였다. 다만 사마방목이나 방목 기록에 따라 동일 인물의 본관이 '개성' 또는 '설성'으로 다르게 기재된 경우도 있어, 두 성씨의 계통상 관계에 대한 세밀한 구분은 족보 편찬 시기와 기록 주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주요 인물

설성 김씨의 주요 인물로는 고려 시대 비순위 후령 별장을 지낸 김원(金源), 조선 시대 사재감정을 역임한 김신주(金臣株), 장악원정 김대수(金大壽), 중추부지사 김윤방(金潤邦) 등이 꼽힌다. 근현대 인물로는 대한민국의 조각가이며 홍익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및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한 김경승(金景承)이 있다.

또한 조선 시대 과거급제자로 문과 3명, 생원진사시 10명, 역과 15명 등 모두 31명이 방목 기록에 나타난다.

집성촌

설성 김씨의 집성촌으로는 경기도 개풍군, 개성시, 장단군 진서면 등이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 《설성김씨대종보(雪城金氏大宗譜)》, 서울: 雪城金氏大宗譜所, 2001.
  • 《동국여지승람》
  • 《동국여지비고》
  • 《증보문헌비고》
  •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1985, 2000, 2015)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