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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성씨)

설 (성씨)

설(薛, 偰)씨는 한국의 성씨로,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뉜다. 하나는 신라 건국 신화에 기원을 둔 토착 성씨인 설(薛)씨이고, 다른 하나는 원나라 시기 고려에 귀화한 위구르계 설(偰)씨이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설(薛)씨는 42,646명, 설(偰)씨는 2,937명이 집계되었다.

설(薛)

설(薛)씨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 건국 설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6촌(六村) 중 하나인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촌장 호진(虎珍)이 그 시조로 전해진다. 신라 유리 이사금 9년(서기 32년)에 6촌이 6부로 개편되면서 명활산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로 개칭되었고, 이때 호진에게 설(薛)씨 성이 하사되었다고 전한다. 다만 신라에서 성씨 사용이 본격화된 것은 진흥왕대 이후라는 통설이 있어, 실제 성씨 사용 시기는 설거백(薛居伯)의 14세손인 설곡(薛嚳) 대에 이르러서였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본관은 경주(慶州)와 순창(淳昌)이 대표적이며, 그 외 밀양·순천·옥천·진주·창원·개성 등 여러 본관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경주 설씨와 순창 설씨로 합본하여 계대를 파악하고 있다. 순창 설씨는 고려 인종 무렵 경주 설씨에서 분적되었으며, 36세손 설자승(薛子升)이 예부시랑으로 순화백(淳化伯)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본관을 순창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 저명한 인물로는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元曉大師)와 그의 아들로서 이두(吏讀)를 집대성하고 국학(國學)을 진흥시킨 설총(薛聰)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유리명왕 대의 설지(薛支), 태조왕 대의 설유(薛儒) 등도 등장하나, 이들이 경주 설씨와 어떤 관계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설(偰)

설(偰)씨는 위구르(回鶻) 계통의 성씨로, 몽골과 러시아 국경을 흐르는 설련하(偰輦河, 셀렝가강) 유역에 거주하던 부족이 지명에서 성씨를 취한 데서 비롯되었다. 원나라에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설문질(偰文質)의 손자 설손(偰遜, ?~1360)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1358년(공민왕 7년) 고려에 귀화하면서 한국에 정착하였다. 공민왕은 원나라 시절 황태자 단본당(端本堂)에서 설손과 안면이 있었기에 그를 후대하여 고창백(高昌伯)에 봉하고 이후 부원후(富原侯)로 다시 봉하였다.

설손의 아들들 또한 고려와 조선 초기 문신으로 활약하였다. 장남 설장수(偰長壽)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내고 조선 건국 후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복직되었으며, 5남 설미수(偰眉壽)는 예조판서와 검교우참찬(檢校右參贊)을 역임하고 둔전제(屯田制) 실시를 건의하였다. 본관은 경주 단본이다.

한편 설(薛)씨는 한자 표기에서 卨(사람이름 설) 또는 楔(문설주 설)을 혼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동일 성씨의 이체자(異體字) 사용에 해당한다. 특히 偰 자가 한글 완성형 코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楔 자로 대체 표기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중국의 설씨

중국에도 설(薛)씨와 설(偰)씨가 존재한다. 설(薛)씨는 제(齊)나라에서 나온 규성(嬀姓) 계통, 송(宋)나라에서 나온 계통, 북위 효문제의 성씨 개혁으로 탄생한 계통, 그리고 설연타(薛延陀) 부족에서 유래한 계통 등 다양한 기원을 가진다. 당나라의 명장 설인귀(薛仁貴)가 대표적 인물이다. 설(偰)씨는 중국 성씨 순위 76위로, 위구르계 기원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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