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토성(石吐城)은 삼국시대 한반도에 존재했던 성곽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와 백제의 전투와 관련된 지명으로 등장하며,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제시되어 있다.
개요
석토성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신라본기〉, 〈김유신 열전〉에 등장하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삼국사기》 권37 〈잡지(雜志)〉 지리(地理) 부분에서는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 즉 삼국 시대에 이름은 있으나 위치를 알 수 없는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역사적 기록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9년(649년) 가을 8월에 의자왕은 좌장(左將) 은상(殷相)에게 정예 병사 7,000명을 거느려 신라의 석토성 등 일곱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백제군은 이 일곱 성을 함락시켰으나, 이에 신라의 진덕왕은 대장군 김유신과 장군 진춘, 죽지, 천존 등을 파견하여 대응하게 하였다.
신라군과 백제군은 10여 일 동안 서로 승부가 나지 않았고, 김유신은 군대를 도살성(道薩城) 아래에 주둔시켰다. 김유신은 백제의 첩자가 올 것을 예상하고 병사들을 시켜 "내일 지원군이 오는 것을 기다린 후 결전하겠다"는 거짓 정보를 유포하게 하였다. 이 정보를 접한 백제군이 신라군의 증원을 두려워하는 사이, 김유신은 진격하여 백제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에서 신라군은 백제의 장사(將士) 100명을 죽이거나 사로잡고 군졸 8,980명을 참살하였으며, 전마 1만 필을 획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비정(比定)
석토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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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문안산성설: 일부 학자(민덕식, 1983)는 석토성을 충청북도 진천군의 문안산성(文案山城)으로 비정하였다. 그러나 이 학설은 삼국 항쟁의 전적과 지리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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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가은암산성설: 다른 학설에서는 석토성을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성곡리의 가은암산(加隱巖山)에 소재한 산성으로 비정한다. 이 학설의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제시된다.
- 《삼국사기》에서 석토성 인근에 도살성(道薩城)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 단양군 도락산에 도살성이 실존한다는 점.
- 가은암산 주변에 삼국시대 산성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석토성이 이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가은암산성(加隱巖山城)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이 성이 석축으로 둘레 약 3,018척, 성안에 샘 3개가 있고 험조하다는 내용이 석토성의 특징과 부합한다는 점.
성곽의 특징
단양 가은암산성으로 비정되는 석토성은 남한강 상류 지역의 험준한 산세에 축성된 석축 산성으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다.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편, 와편(瓦片), 투석전에 사용된 강돌 등이 발견되었다.
현황
석토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학설 외에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현재까지 확정된 결론은 없다.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는 원래부터 위치 미상으로 분류되었던 지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석토성의 정확한 위치는 학계의 지속적인 고증 대상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