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석탑(石塔)은 돌을 재료로 하여 만든 탑을 가리킨다. '석조탑파(石造塔婆)'의 줄임말이며, 재료로는 화강암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안산암, 점판암 등이 사용된 사례도 있다.
구조
석탑은 크게 기단부(基壇部), 탑신부(塔身部), 상륜부(相輪部)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기단부가 생략되고 자연 암반을 그대로 기단으로 삼은 경우도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층기단과 상층기단을 쌓아 올리는 이층기단(二層基壇)이 한국 석탑의 전형적 형식이다. 탑신부는 각 층의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교대로 쌓여 다층 구조를 이루며, 상륜부는 노반(露盤)·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보주(寶珠) 등이 찰주(擦柱)에 꽂혀 장식된다.
역사 및 발생
한국에서 석탑이 발생한 시기는 삼국시대 말기인 7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불교가 전래된 4세기 후반부터 약 200년간은 목탑(木塔)이 주로 건립되었으며, 오랜 목탑 건조 기술의 축적이 석탑 발생의 배경이 되었다.
삼국 중 백제에서 석탑이 먼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 석탑으로는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과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이 있다. 이 두 탑은 목탑의 양식을 석재로 충실히 모방한 초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준다. 미륵사지석탑은 기단부가 낮고 작으며 탑신 중심에 거대한 방형석주(方形石柱)가 있는 점 등 목탑의 구조를 그대로 석재로 구현하였다.
신라의 석탑은 전탑(塼塔, 벽돌탑)을 모방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634년 건립)으로, 점판암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 형식이다.
신라 석탑의 전형
삼국통일 이후 백제계와 신라계의 서로 다른 두 양식이 통합되어 한국 석탑의 전형이 성립되었다. 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국보)과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이 초기 전형의 표본이며, 8세기 중엽 불국사삼층석탑(석가탑, 국보)에 이르러 전형 양식이 완성되었다.
이 전형 양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2층 기단 구조
- 상·하기단 면석에 양쪽 우주(隅柱, 모서리기둥)와 2주의 탱주(撑柱, 받침기둥)를 새김
-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을 각각 1석씩으로 조성
- 옥개석 하면에 각형 5단의 받침 마련
- 방형 평면의 다층 구조
8세기 이후 신라 하대(下代)로 갈수록 석탑은 전체 규모가 작아지고 옥개석 받침의 단수가 줄어들며 기단부의 탱주가 1주로 감소하거나 생략되는 등 양식적 약화가 나타났다. 또한 2층기단 대신 단층기단을 가진 석탑도 등장하였다.
특수형 석탑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 이후 전형 양식과 다른 이형적(異型的) 석탑이 출현하였다. 대표적으로 불국사 다보탑(국보),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정혜사지십삼층석탑(국보) 등이 있다. 이들은 건축적 결구보다 장식적 요소가 강조된 비건축적 형태를 띤다.
고려시대의 석탑
고려시대에는 불교 교세의 절정에 힘입어 석탑 건립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왕실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 세력과 민중의 참여로 다양한 양식이 나타났다. 신라 전형 양식을 계승한 일반형 석탑 외에 팔각·육각 등 다각형 평면의 석탑이 새롭게 등장하였으며, 백제의 고토(古土)인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백제계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 건립되었다. 대표적으로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 경천사지십층석탑(국보)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석탑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불교미술이 위축되면서 고려시대에 비해 다양한 형식의 석탑이 조성되지 못하였다. 초기에는 고려 양식이 일부 계승되었으며,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이 조선시대 이형석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전반적으로 신라시대 전형 양식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규모가 작아지고 세부 조각이 약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의의
한국 석탑은 불교 신앙과 건축 기술이 결합된 대표적 석조 문화유산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양식적 변천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건축 문화재 중 석조 건축물이 약 76%를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전국에 다수의 석탑이 현존하여 국가지정문화재(국보·보물)로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