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실(石室)
정의
"석실"은 한자어 "石室"에서 유래한 말로, 문자 그대로는 "돌로 만든 방"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주로 역사·고고학 분야에서 무덤(고분) 내부에 돌을 쌓아 만든 매장 공간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고분 안의 돌로 된 방"으로 정의하며, 동의어로 "돌방"을 들 수 있다.
고고학적 의미
고고학에서 석실은 횡혈식(橫穴式) 매장시설의 일종으로, 돌로 방을 만들고 출입시설을 설치하여 추가장(追加葬)을 의도한 묘제(墓制)와 관련된다. 석실은 구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를 복도처럼 만든 연도(羨道)가 존재하는 형태.
- 횡구식석실(橫口式石室): 연도 없이 묘실의 한쪽 벽을 뜯어서 출입하도록 한 형태.
일반적으로 "석실묘"라고 할 때는 횡혈식석실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배경
석실의 기원은 중국 중원 지역의 묘제에서 찾을 수 있다. 전국시대 이후 공심전묘(空心塼墓)로부터 한대(漢代) 요동 지역을 거쳐 낙랑 지역까지 확산된 횡혈계 묘제가 한국의 석실 발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학계에서는 본다. 다만 중국식 횡혈계 묘제는 축조 재료가 달랐으며, 한국에서는 할석(割石)을 사용한 축조 방식으로 변형·발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삼국시대의 경우, 고구려 지역에서 가장 먼저 횡혈식석실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백제(4세기경), 신라·가야(6세기경) 순으로 확산되었다. 고구려의 석실 내부 구조는 천장 구조(궁륭형, 말각조정천장, 평천장 등)와 평면 형태에 따라 구분되며, 초기에는 복잡한 다실묘 구조에서 후기에는 단실묘 구조로 통일되는 변화 양상을 보인다.
백제의 경우 공주 송산리고분군이 웅진기 석실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사비기에는 능산리고분군의 정제된 화강암 석실이 특징적이다. 통일신라 시기에는 횡혈식석실묘가 왕릉의 기본 묘제로 정착하였다.
다른 용법
'석실'은 고고학 용어 외에도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다.
- 지명: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의 석실마을은 조선시대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위치했던 것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실서원은 1663년(현종 4) '석실'이라는 명칭으로 사액되어 승격된 서원이다.
참고 문헌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 '석실묘(石室墓)' 항목
-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석실' 항목
- 한국학중앙연구원 sillokwiki, '석실(石室)'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