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徐嶰, 1537~1559)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대구(大丘)이며, 자는 정지(挺之), 호는 함재(涵齋)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약봉(藥峯) 서성(徐渻)의 아버지이다.
가계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을 지내고 이조참판에 추증된 서팽소(徐彭召)이며, 아버지는 예조참의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서고(徐固)이다. 어머니는 순흥 안씨(順興安氏)로, 이인찰방을 지낸 안사전(安嗣全)의 딸이다. 부인은 고성 이씨(固城李氏)로, 청풍군수를 지낸 이고(李股)의 딸이다.
생애와 활동
서해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으며, 상사(上舍) 이중립(李中立)과 절친한 사이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장차 학문을 크게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으나, 1559년(명종 14) 2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장인인 이고가 사위와 딸을 위해 경상북도 안동에 지어 준 소호헌(蘇湖軒)은 현재 보물 제47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저술과 추모
저서로는 『함재집(涵齋集)』이 있다. 사후 의정부영의정(議政府領議政)에 추증되었으며, 1757년(영조 33) 대구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묘는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다.
가문의 계승
아들 서성(徐渻, 1558~1631)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으로 활동하며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서해가 서성의 생후 1년 만에 사망함에 따라, 서성은 숙부 서엄(徐崦)의 집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