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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침

서침(徐沈 또는 徐沉, 생몰년 미상)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성묵(聖黙), 호는 구계(龜溪)이다.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전공하였다.

생애 고려 말 조선 초의 변혁기에 향리에서 은거하여 학문 연구에 힘썼으며, 1433년(세종 15)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에 올랐고, 1434년 전라처치사(全羅處置使)를 역임하였다. 명망이 높았던 까닭에 삼남균전제처사(三南均田制處使)에 발탁되었으며, 세종조에 조봉대부(朝奉大夫)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 1426년(세종 8)에는 가뭄과 홍수 재해가 잦아지자 세종이 당시 연산도호부사(連山都護府使)로 있던 서침을 불러 구휼 대책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묘는 대구광역시 팔공산 중심동(현재 대구광역시 용수동)에 있으며, 비문은 이의조(李義藻)가 짓고 글씨는 후손 서식(徐湜)이 썼다. 1665년(현종 6)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가족 관계 조부는 서영(徐潁)이고, 부친은 서균형(徐鈞衡)이다. 부인은 고성이씨(固城李氏)이며, 아들로 서문한(徐文翰)과 서문간(徐文幹)이 있다.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달성서씨학유공파보(達城徐氏學諭公派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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