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전서숙(瑞甸書塾)은 1906년 만주(간도) 용정촌(龍井村)에 설립된 한국의 민족교육기관이다. 을사조약(1905)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되었으며, 한말의 애국지사이자 정치가였던 이상설(李相卨)을 중심으로 여준(呂準), 정순만(鄭淳萬), 이동녕(李東寧), 박정서(朴禎瑞), 김우용(金禹鏞), 황달영(黃達永) 등 여러 애국지사들이 참여하였다.
설립 배경과 명칭
학교의 명칭은 북간도 용정 일대의 넓은 평야를 일컫는 '서전평야(瑞甸平野)' 또는 '서전대야(瑞甸大野)'에서 유래하였다. 이상설이 천주교회장 최병익(崔秉翼)의 집을 자신의 사재로 매입하여 학교 건물로 개수하였으며, 건물 면적은 약 231m² 규모였다. 학생 22명으로 출발하여 이후 갑반(고등반), 을반(초등반), 병반으로 분반 운영되었으며, 완전 무상교육으로 운영되었고 일체의 경비는 이상설이 사재로 부담하였다.
교육 내용과 특징
교과목은 역사·지리·수학·정치학·국제공법·헌법 등 신학문을 중심으로 편성되었으며, 이상설이 직접 저술한 《산술신서》 상·하권이 교재로 사용되었다. 교육 내용은 철저한 항일민족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숙장(塾長)은 이상설이 맡았으며 운영은 이동녕·정순만 등이 담당하였다.
폐교와 역사적 의의
1907년 4월 이상설이 이동녕·정순만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면서 재정난을 겪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 8월 용정에 조선통감부 간도출장소가 설치되어 일제의 감시와 방해가 심화되자, 학교는 더 이상 운영을 지속하지 못하고 폐교 위기에 처했다. 통감부출장소가 회유책으로 매월 보조금을 제안하였으나 학교측은 이를 거절하였고, 문을 닫은 후 갑반 학생들만 탑두구(塔頭溝) 근처에서 수업을 계속하여 졸업식을 마친 뒤 해산하였다.
비록 1년 미만의 짧은 운영 기간이었으나, 서전서숙은 북간도 지역 최초의 근대적 민족교육기관으로서 이후 북간도·서간도·노령(러시아) 연해주 및 국내 각지의 민족교육과 항일독립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서전서숙이 폐교된 자리에는 명동서숙이 이어지며 간도 지역 민족교육의 전통을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