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동운동연합(-勞動運動聯合, 1985년 8월 25일 ~ 1986년)은 1985년 구로동맹파업 이후 서울 지역의 노동운동가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대중정치조직이다. '서노련'이라는 약어로도 불렸다.
배경
1985년 6월,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동맹파업으로 기록되는 구로동맹파업이 발생하였다. 이 파업으로 44명의 노동자가 구속되고 1천여 명이 해고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파업을 주도했던 구로공단의 노동자들과 청계피복노동조합 등의 노동운동가들은 단위 사업장의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노동조합 간 연대와, 보다 근본적인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민주화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생각을 같이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모여 서울노동운동연합의 결성을 결의하였다.
결성
서울노동운동연합은 1985년 8월 25일, 노동자연대투쟁연합, 청계피복노동조합,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위원회,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등 4개 조직을 연합하여 출범하였다. 결성을 주도한 인물로는 김문수, 심상정, 박노해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여러 노동운동가들과 유시민, 백태웅 등 학생운동 출신 인사들도 합류하였다.
창립선언문에서 이들은 "어떠한 합법적 민주 노조도 용납되지 않는 현재의 탄압 상황 아래서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 조직을 건설하지 않고서는 노동운동의 궁극적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고 밝히며, 모든 민중·민주 운동 세력과의 연대를 선언하였다.
활동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주요 활동은 노동조합 교육,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반대, 노동조합 활동 지원 등이었다. 이들은 전위적 노동자 조직이 한국의 독재를 종식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보았다.
가장 주요한 활동 가운데 하나는 『서노련신문』의 발간이었다. 『서노련신문』은 노동운동 소식과 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은 노동자 대중 신문으로, 8절지 4면으로 발행되었으며, 1986년 3월 14일 발간된 제12호부터는 『노동자신문』으로 발전하였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이 주장한 사항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삼민 헌법'과 '생활 임금'이었다. 1986년 3월 19일에는 구로공단에 위치한 모세미용실을 점거하고 '생활 임금 쟁취' 등을 요구하며 농성과 가두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1986년 5월 1일에는 노동절을 기념하여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가두집회를 주도하였다.
해체
1986년 5월 3일 5·3 인천사태 이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활동가 10명이 구속되면서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1986년 5월 4일, 전두환 정권은 서울노동운동연합을 국가보안법에 의한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연행하였다. 당시 정권은 수사관할권이 없는 보안사령부를 동원하여 관련자를 구속하고, 고문과 같은 가혹행위를 통해 조작사건을 만들어냈다는 증언이 있다. 보안사령부는 체포된 노동운동가들에게 전기고문, 물고문 등의 혹독한 고문을 가하였으며, 주요 목적은 이들이 국가전복을 기도하였다는 거짓자백을 받아내고 체포하지 못한 심상정, 박노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서울노동운동연합은 주요 구성원이 감옥에 수감됨으로써 사실상 해체되었다. 또한 새로운 조직 노선과 투쟁 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연합 단체였던 인천지역노동자연맹과의 관계도 무너지면서 1986년 와해되었다.
이후
서울노동운동연합이 와해된 뒤, 김문수는 2년 6개월의 감옥생활을 거쳐 민중당 창립에 참여하였고, 심상정은 계속되는 수배 생활 속에서도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에 참여하였다. 한편 박노해, 백태웅 등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조직하여 급진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주장하였다.
평가
서울노동운동연합의 활동에 대해서는 '소그룹 운동을 극복하고 80년대 이후 선진노동자의 성장으로 인해 고양된 노동자 역량을 담아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평가가 있는 반면, '노동자들과 대중과는 유리된 활동가들의 자기중심주의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