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는 한국어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 크게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명사와 중국 역사상의 인물명으로 나뉜다.
1. 서소(書疏) — 표준국어대사전 등재어
'서소(書疏)'는 한자어 명사로, '글 서(書)'와 '트일 소(疏)'를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을 뜻하며, 동의어로는 '편지'가 있다. 즉, 편지나 서신을 의미하는 고유한 한자어 표현이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편지'나 '서신'에 비해 사용 빈도가 낮은 편이다.
2. 서소(舒邵) — 중국 후한 말의 인물
서소(舒邵)는 중국 후한 말 원술(袁術) 휘하의 정치인이다. 자는 중응(仲膺)이며, 연주(兗州) 진류군(陳留郡) 사람이다. 의로운 행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형 서백응(舒伯膺)의 친구가 살해당하자 서소가 대신 복수하였고, 이후 형제가 서로 사형을 받겠다고 다투어 그 의로움이 세상에 알려져 사면을 받았다. 원술 밑에서 부릉현장(阜陵縣長)과 패국상(沛國相)을 지냈으며, 극심한 가뭄 때 원술이 비축한 군량미 10만 곡(斛)을 허락 없이 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가 원술이 노하여 죽이려 하였으나, "한 사람의 목숨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게 되어 다행입니다"라고 말하여 원술이 감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들은 서섭(舒燮)이다.
3. 서소(徐邵)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서소(徐邵)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관료로, 자는 공조(公佐)이며 예주(豫州) 여남군(汝南郡) 사람이다.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인물 평가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조조(曹操)가 그를 중히 여겼으며, 서소가 조조를 평한 "청평의 간사한 적(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이라는 평가는 후대까지 널리 인용되었다.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중(郎中)과 여남공조(汝南功曹)를 지냈다. 말년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4. 서소(書巢) — '책의 둥지'라는 뜻
서소(書巢)는 '글 서(書)'와 '둥지 소(巢)'를 쓰는 한자어로, 문자 그대로 '책의 둥지'라는 의미이다. 주로 책을 많이 소장한 곳이나 서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되며, 블로그나 문집 제목 등에서도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