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시는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북부에 위치한 시로, 태안반도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으며, 아래에서는 시대별로 그 흐름을 정리한다.
선사시대
서산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후 신석기·청동기 시대에도 많은 인구가 정착한 흔적이 있으며, 해미휴암리, 대산읍 대로리 등지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다. 서산 지역이 바다를 통해 문물이 들어오는 교통의 요지였던 점이 이러한 유적 형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국가 시대 (마한)
삼한시대에 서산 일대는 마한에 속하였다. 마한의 54개 소국 중 하나로, 현재의 지곡면 일대에 "치리국국(致利鞠國)"이라는 부족국가가 형성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치리국국의 정확한 위치와 성격에 대해서는 문헌상 확실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삼국시대 (백제)
서산 지역은 백제에 의해 마한 소국들이 정복되면서 백제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에 따르면, 이 지역이 직접적으로 백제의 지방으로 편입된 것은 4세기 중후반으로 여겨지며,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금동신발, 환두대도, 중국제 자기 등은 백제 중앙으로부터 사여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당시 서산 지역의 토착 세력이 백제왕의 권위를 바탕으로 지방을 통제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행정적으로는 부춘산 기슭에 오늘날 서산시의 모체가 되는 "기군(基郡)"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서산시청 관계 자료에 따르면, 백제 시대에 "기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은 문헌상 확실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통일신라 경덕왕 14년(755년)에 기군이 "부성군(富城郡)"으로 개칭되었다. 부성군은 옛 지곡면 산성리에 있는 부성산성 아래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명이 부성산성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진성여왕 7년(894년)에는 최치원이 부성군의 태수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고려 인종 21년(1143년)에는 부성군에 현령(縣令)을 두어 부성현(富城縣)으로 격하되었다가, 명종 12년(1182년)에는 현령과 현위의 다툼이 심해져 잠시 폐현되고 운주(運州)에 예속되는 변화를 겪었다.
이후 충렬왕 10년(1284년)에 "서산군(瑞山郡)"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하였다. 서산시청의 설명에 따르면, 충렬왕은 당시 서산 주민 정인경이 괴산과 신창에 침입한 몽고군을 습격하여 많은 전과를 올린 것을 가상히 여겨, 폐현되었던 이 지역을 군으로 회복시켜 주면서 명칭을 "서산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후 충렬왕 34년(1308년)에는 "서주목(瑞州牧)"으로 승격되었고, 충선왕 2년(1310년)에는 "서령부(瑞寧部)"로 개칭되었다가 이후 다시 "지서주사(知瑞州事)"로 격하되었다.
고려시대 서산 지역에는 부성군을 중심으로 지곡현, 정해현, 여미현, 고구현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시대
조선 시대에 접어들어 태종 13년(1413년)에 이르러 "서산군(瑞山郡)"으로 정비되었다. 이때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뉘어 있었다.
서산군은 백제의 기군에서 시작해 통일신라 부성군, 고려의 지서산군사·서주목·서령부·지서주사를 거쳐 조선 태종 13년에 서산군으로 정리된 곳이다. 해미현은 조선 태종 7년(1407년)에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쳐 "해미(海美)"라 하고, 1413년에 현감을 설치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서산시청 자료에 따르면, 서산은 조선 시대에도 여러 차례 군(郡)과 현(縣) 사이의 지위 격하와 복구가 반복되었다. 태종 13년에 서산군으로 회복된 이후, 숙종 21년(1695년)에 강등되었다가 18년 만에 회복되었고, 영조 9년(1733년)에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9년 후 복군되었으며, 정조 원년(1777년)에 다시 현으로 강등된 후 9년 만에 복군되었다. 사학자들은 이러한 잦은 강등과 복군의 원인을 지역민들의 반란이나 대역죄보다는 당시의 잦은 관제 개편 때문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근대
1895년(고종 32년) 음력 윤5월 1일 지방제도 개편 때, 대한제국은 종래의 8도 체제를 23부제로 바꾸면서 서산 지역은 홍주부 관할의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으로 나뉘었다. 1896년 8월 4일에는 전국이 13도로 재편되면서 이들은 충청남도 관할의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서산군, 태안군, 해미군이 서산군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때 2읍 16면 체제로 정비되었다. 1917년에는 서령면이 서산면으로, 지성면이 해미면으로 개칭되었다.
현대
- 1942년 10월 1일: 서산면이 서산읍으로 승격되었다.
- 1957년 11월 6일: 대호지면과 정미면이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 1973년 7월 1일: 태안면이 태안읍으로 승격되고, 여러 면 간 행정구역 조정이 이루어졌다.
- 1980년 12월 1일: 안면면이 안면읍으로 승격되었다.
- 1986년: 고남출장소가 고남면으로 승격되었다.
-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 서산읍 일원이 서산시로 승격되고, 태안읍·안면읍·고남면·남면·근흥면·소원면·원북면·이원면 일원은 태안군으로 분리·설치되었다.
- 1991년 12월 1일: 대산면이 대산읍으로 승격되었다.
- 1995년 1월 1일 (법률 제4774호): 서산시와 서산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태의 서산시가 설치되었다.
- 1998년 10월 12일: 오산동이 석남동으로 통합되었다.
- 2008년 2월 11일: 동문동이 동문1동으로, 활성동이 동문2동으로 개칭되었다.
- 2011년 7월 4일: 대산읍 독곳리가 독곶리로 개칭되었다.
요약
서산시의 역사는 마한 시대의 소국에서 시작하여 백제의 기군(基郡), 통일신라의 부성군(富城郡), 고려 충렬왕 때의 서산군(瑞山郡)이라는 명칭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조선 시대에는 군과 현의 지위가 여러 차례 오르내렸으며, 일제강점기인 1914년 서산·태안·해미가 하나의 서산군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1989년 서산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서산군과 통합되어 오늘날의 도농복합형 서산시가 형성되었다.
현재의 "서산(瑞山)"이라는 명칭은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 지역이 오랜 세월 동안 서해안 일대의 해상 교통 요충지로 기능해 온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