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서부극(西部劇, Western)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Old West)를 배경으로 하는 장르로, 소설에서 시작되었으나 영화를 통해 가장 활발하게 발전하고 대중화되었다. 미국 영화협회(AFI)는 서부극을 "개척 정신과 이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개척의 종말을 담고 있는 미국의 서부를 무대로 한 장르"로 정의한다. 서부극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장르 중 하나이며, 현대 오락 영화의 서사 구조와 클리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과 역사
서부극의 기원은 19세기 중엽 미국에서 유행한 '10센트 소설'(dime novel)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문명화된 동부 백인들에게 서부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판타지의 땅으로 인식되었고, 버펄로 빌 코디, 와일드 빌 히콕, 와이어트 어프 등 실존 인물들의 영웅담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에디슨 스튜디오는 1903년 세계 최초의 극영화로 알려진 《대열차 강도》(The Great Train Robbery)를 제작하였으며, 이 작품은 서부극 장르의 전형적인 서사 패턴(범죄, 추적, 보복)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된다.
서부극의 전성기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할리우드 고전기로, 이 시기에는 존 포드, 하워드 혹스, 라울 월시, 안소니 만, 버드 보티커, 로버트 올드리치, 새뮤얼 풀러 등의 감독들이 대표적인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당시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감독과 배우, 스태프를 정직원으로 고용한 공장제 시스템 아래 연간 수십 편의 영화를 생산하였으며, 존 포드와 같은 A급 감독도 일 년에 서너 편씩 영화를 찍을 정도로 제작이 활발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 등이 대표적이며, 기존 할리우드 서부극의 이상화된 영웅상과 달리 냉소적이고 적나라한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을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장르적 특징
서부극은 일반적으로 문명과 광야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도덕극의 성격을 띤다. 주요 배경은 목장, 작은 변경 마을, 술집(saloon), 철도, 고립된 군사 요새 등이며, 건조하고 황량한 사막과 산악 지형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유타주와 애리조나주에 걸친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는 많은 서부극의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등장인물로는 카우보이, 무법자, 보안관, 현상금 사냥꾼, 총잡이, 군인(특히 기병대), 정착민(농부, 목장주), 아메리카 원주민 등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대개 백인 남성으로, 챙이 넓은 스테슨 모자, 목도리 반다나, 조끼, 박차가 달린 카우보이 부츠를 착용하고 리볼버나 소총으로 무장한다. 여성 인물은 주인공의 연애 상대나 살롱걸, 정착민의 아내 등 부차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서부극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결투(showdown/duel)로, 두 명의 총잡이가 마주 서서 신호에 맞춰 총을 뽑아 쏘는 방식이 전형적이다. 이러한 결투 장면은 서부극의 메인 이벤트이자 서사적 클라이맥스로 기능한다.
비판과 수정주의
서부극은 오랜 기간 동안 인종 차별, 성차별, 폭력의 미화 등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이 잔인한 악당으로 일관되게 묘사된 점, 실제로 카우보이 직종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히스패닉계와 흑인 인물이 주역에서 배제된 점 등이 주요 비판 대상이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50년대 이후부터 '수정주의 서부극'(Revisionist Western)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존 포드의 《수색자》(The Searchers, 1956)는 백인 주인공의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조명하였고, 1990년대에는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 1990),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 1992) 등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수정주의 서부극의 상업적·비평적 성공을 입증하였다.
하위 장르와 변용
서부극은 다양한 하위 장르로 분화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스파게티 웨스턴, 호주의 미트파이 웨스턴(Meat Pie Western), 소련과 동구권의 레드 웨스턴(Red Western/Ostern), 일본의 스키야키 웨스턴(Sukiyaki Western), 한국의 만주 웨스턴(Manchuria Western) 등 각국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용된 형태가 존재한다. 또한 SF와 결합한 스페이스 웨스턴(Space Western), 현대를 배경으로 한 네오 웨스턴(Neo-Western) 등 장르적 경계를 확장한 사례도 다수 나타났다.
한국에서의 서부극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일제강점기의 만주를 배경으로 한 '대륙물'이 제작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웨스턴의 문법을 전유한 작품들을 '만주 웨스턴'이라 부른다.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1968), 임권택 감독의 《황야의 독수리》(1969),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 등이 대표적이다. 2008년에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칸 영화제에 초청되며 한국형 웨스턴에 대한 관심을 재점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