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하(徐光夏 / 徐光河)는 한국의 역사 기록에서 확인되는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 서로 다른 두 명 이상의 인물이 존재한다.
1. 조선 후기의 인물 — 서재필의 양아버지 (徐光夏)
조선 후기의 인물로,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서재필(徐載弼)의 양아버지이자 7촌 재당숙이다. 충청남도 논산군 출신이며, 본관은 대구(달성) 서씨이다.
- 아버지는 서상목(徐相穆)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진사 이인오의 딸)이다.
- 부인은 안동 김씨 세도가문의 일족인 판서 김온순(金蘊淳)의 딸이자 김성근(金聲根)의 누이였다.
- 자녀가 없었기에 6촌 형제인 서광효(徐光孝)의 적차남 서재필을 양자로 들였다.
- 서재필을 한성에 있는 처남 김성근의 문하에 보내 글을 배우게 했으며, 이를 계기로 서재필은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 인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 1884년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서광하는 양아들 서재필을 파양(罷養)하여 본가로 돌려보냈으나 연좌되어 재산을 몰수당했다.
- 1884년 6월 20일에 부인 안동김씨가 사망하였으며, 이후 서광하本人的 행적은 기록이 소략하여 상세히 알 수 없다.
- 1896년 귀국한 서재필이 양아버지 서광하를 찾아온 일에 대해, 윤치호의 영문 일기에는 서재필이 서광하와 전 장인 내외를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 조선 후기 경산 출신의 효자 (徐光河)
조선 후기 경상도 경산현(현 경상북도 경산시) 출신의 효자이다. 자는 철보(澈輔), 호는 추모(追慕)이며,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생몰년은 1755년~1829년이다.
- 아버지는 서도희(徐道禧), 어머니는 담양 전씨(전득주의 딸)이다.
-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 어머니 상을 당해서는 3년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효성에 감복한 호랑이가 주변을 지켜주었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 회갑(回甲)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것을 애통히 여겨 아들과 조카의 헌수를 금지시켰다.
- 아버지 묘소 앞에 추모재(追慕齋)를 짓고 거처로 삼은 후, 술과 음식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 1884년(고종 21)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되었다.
3. 현대의 저자
예스24 등에서 《서광하의 한반도 통일 4대 방안》 등의 저서를 출간한 현대 인물이 확인된다. 통일운동 관련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나, 공신력 있는 백과사전 수준의 상세 이력은 확인되지 않는다.
어원: '서광하'는 성씨 '서(徐)'에 '광하(光夏)' 또는 '광하(光河)'라는 이름이 결합된 인명이다. '광하(光夏)'는 '빛날 광(光)'과 '여름 하(夏)' 또는 '클 하(夏)'의 조합이고, '광하(光河)'는 '빛날 광(光)'과 '물 하(河)'의 조합이다. 두 경우 모두 한자 표기가 다르므로 개별 인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 위 인물들 중 어느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문맥에 따라 판단이 필요하며, 단일 개념의 백과사전 표제어라기보다는 동명이인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