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徐廣, 352년~425년)은 중국 동진(東晉)과 유송(劉宋) 시기의 관료이자 학자이다. 자(字)는 야민(野民)이며, 동완 고막(東莞 姑幕, 현재의 장쑤성 창저우 시)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능통하여 제자백가의 여러 학문을 두루 연구하였다. 377년 사현(謝玄)이 연주(兗州) 자사로 임명되자 그의 종사(從事)로 기용되었다.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효무제(孝武帝)로부터 비서감(秘書監)에 임명되었고, 이후 낙성후(樂成侯)의 작위를 받았다.
405년에는 《차복의주》(車服儀注)를 제정하였으며, 진군자의참군(鎭軍諮議參軍)과 기실(記室)을 겸직하였다. 낙성현 오등후(樂城縣五等侯)의 작위를 받고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와 저작랑(著作郎)을 겸하였다.
406년에는 안제(安帝)로부터 국사 편찬을 명령받아, 416년에 《진기》(晉紀) 46권을 완성하였다. 420년 유유(劉裕)가 유송을 건국하자, 노령을 이유로 퇴직하고 귀향하였다. 425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주요 저술인 《진기》는 동진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로, 이후 《진서》(晉書) 편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의 행적은 《진서》 권82 열전 제52, 《송서》 권55 열전 제15, 《남사》 권33 열전 제23 등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