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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주 (조선)

서경주(徐景霌, 1579년 ~ 1643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빈(儀賓)으로, 제14대 국왕 선조의 사위이다.

가계

본관은 대구(大邱)이며, 자는 자순(子順), 호는 송강(松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증직된 서고(徐固)이며, 할아버지는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된 서해(徐嶰)이다. 아버지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지낸 약봉(藥峰) 서성(徐渻)이고, 어머니는 송녕(宋寧)의 딸인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형으로 서경우(徐景雨), 서경수(徐景需), 서경빈(徐景霦)이 있다.

생애

서경주는 1591년(선조 24) 나이 13세 때 의빈으로 선발되어 선조의 맏딸 정신옹주(貞愼翁主)와 혼약을 맺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선조를 의주(義州)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이듬해 환도한 뒤 정신옹주와 혼례를 올리고 달성위(達城尉)에 봉해졌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선조의 총애를 받아 총관 겸 상방제조(摠管兼尙方提調)로서 항상 측근에서 시종하였다. 이때 『선원록(璿源錄)』을 감수한 공로로 통헌대부, 봉헌대부 등으로 계속 품계가 올랐다.

광해군 시기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에 대한 폐모론이 일어나자 아버지 서성과 함께 반대하였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영해(寧海)로 유배되었고, 서경주 본인도 크게 등용되지 못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아버지가 복직되었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한 공로로 숭덕대부(崇德大夫)로 품계가 올랐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온 가족이 강화도로 피난을 갔지만, 부인 정신옹주가 피난 생활을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서울로 돌아왔다. 이에 사헌부에서 국가와 존망을 함께해야 할 근신(近臣)과 거실(巨室)의 행위가 아니라며 삭탈관직을 청하였고, 인조가 그를 파직시켰다. 1631년(인조 9) 아버지가 사망하자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만년에는 상방원(尙方院) 및 관상감(觀象監) 제조와 총관(摠管)을 겸하였다.

성품과 평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서경주는 사람됨이 꾸밈이 없고 소박하여 부귀한 사람으로 자처하지 않았다고 하며, 술을 잘 마시고 손님을 좋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달성위 서경주가 죽었다는 기사가 실록에 남아 있으며, 당시 나이는 60세가 넘었다고 전한다.

가족

  • 배우자: 정신옹주(貞愼翁主) - 선조와 인빈 김씨(仁嬪 金氏)의 딸
  • 아들: 서정리(徐貞履·徐正履), 서진리(徐晉履)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위키백과
  • 조선왕조실록
  • sillokwiki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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