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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일

서강일은 1960년대 대한민국에서 활동한 프로 권투(복싱) 선수이다. '돌주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홍수환과 함께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생애 및 배경

서강일은 어린 시절 전쟁 고아가 되어 고아원과 명동 구두닦이를 거치며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본명은 '대안'이었으나,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뜻에서 '대안'으로 이름을 지었다가, 강하게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투철'로 바꾸었고, 최종적으로 세계에서 제일 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강일'로 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1년 2월 안양에서 싸움을 하던 중 당시 프로 권투 선수 출신이었던 김준호의 형의 눈에 띄어 김준호를 만나게 되었고, 이후 김준호의 집에서 동거하며 본격적인 권투 훈련을 시작했다. 첫 공식 경기는 대구에서 열렸으며, 황용수라는 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권투 경력

서강일은 프로 복싱 주니어 라이트급(Junior Lightweight)에서 활동하며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랐다. 1965년 12월 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당시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인 필리핀의 가브리엘 '플래시' 엘로르데(Gabriel "Flash" Elorde)에게 도전하였다. 이 경기는 한국 프로복싱 역사상 최초의 세계 타이틀 매치로 기록되었다. 서강일은 잘 싸웠으나 홈 링의 텃세 속에 판정패를 당했다. 필리핀 현지 매스컴에서는 서강일의 승리 또는 무승부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서강일은 일본 도쿄에서 동양 챔피언 소전의명(일본)을 상대로 1회전 다운을 빼앗으며 판정승을 거두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또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안도 라모스(Ando Ramos)를 상대로 판정승을 거두었고, 라눌 로하스(Ranul Rosas)와의 15회전 경기에서는 두 차례 다운을 당하며 판정패하기도 하였다.

은퇴 이후

1971년 링을 떠난 서강일은 이후 여러 사업을 시도하였으나 여의치 않았고, 후배 선수들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1974년에는 한국권투위원회에 프로모터(흥행사)로 등록하여 '강일 프로모션'을 설립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이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이민을 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다.

동명이인

'서강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로는 위의 권투 선수 외에도 다음과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

  • 영화 사운드팀 스태프: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영화 《써니》, 《황해》, 《연평해전》, 《걷기왕》 등 다수의 한국 영화에서 사운드팀 또는 동시녹음으로 참여한 인물.
  • 전북특별자치도축구협회 회장: 1962년생으로, ㈜세진공업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2025년 1월 제24대 전북특별자치도축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 김천시 공무원(복싱 관계자):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부면장으로 재직 중이며, 대한복싱협회 기술위원 및 경북도 심판위원장으로 활동, 2025년 대한체육회 창립 105주년 기념 체육 유공자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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