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중파(중국어 정체자: 向忠發, 간체자: 向忠发, 병음: Xiàng Zhōngfǎ, 한자음: 상충발, 1879년~1931년 6월 24일)는 중화민국의 정치인으로, 1928년부터 1931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를 역임한 인물이다. 자(字)는 중파(仲發)이다.
생애
샹중파는 1879년 청나라 강소성 상해현(현 상하이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허베이성으로 이주하였고, 14세 때인 1893년부터 한양의 무기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했다. 공장이 문을 닫은 후에는 장시성에서 지주 밑에서 농부로 일했으며, 이후 우한의 상선회사에 취직하여 이등 항해사, 일등 항해사로 승진했다. 이후 다른 상선회사로 옮겨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1921년 노동조합 부조합장이 되었고, 같은 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국민당의 북벌이 시작되고 국민혁명군이 허베이로 진군하자 샹중파는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파업을 일으켜 지방 군벌에 저항했으며, 이 공로로 당내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1926년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지식인을 중시하고 노동자 출신을 무시하는 천두슈(陳獨秀)의 노선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러한 비타협적 노선이 코민테른의 주목을 받았고, 192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총서기로 선출되었다. 당시 코민테른을 장악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노선을 상징하는 존재였으며, 실질적인 당무는 리리싼(李立三)이 주도했다. 그러나 리리싼의 도시 봉기 노선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리리싼은 좌경모험주의로 비판받았다.
1931년 1월 당 대회에서 리리싼이 불신임당하고 샹중파도 총서기직에서 물러났다. 당의 실질적 주도권은 코민테른 파견원 파벨 미프의 지휘 아래 왕밍(王明) 등 소련 유학파에게 넘어갔다.
체포와 사망
1931년 6월, 전 비밀경호원 대장 구순장(顧順章)이 샹중파의 소재지를 국민당 경찰에 밀고하였다. 샹중파는 체포된 후 변절하였으나, 1931년 6월 24일 상하이에서 국민당에 의해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향년 52세 전후였다.
역사적 평가
샹중파는 중국공산당 역사상 유일한 노동자 출신의 총서기였으나, 실질적인 권한 없이 코민테른과 리리싼의 영향 아래 상징적 지도자 역할에 머물렀다. 체포 후 변절한 사실로 인해 중국공산당 내에서의 평가는 부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