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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트알아랍강

샤트알아랍강(아랍어: شط العرب, 페르시아어: اروندرود/Arvand Rud, 영어: Shatt al-Arab)은 이라크 남부의 알쿠르나(Al-Qurnah)에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합류하여 형성되는 강으로,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을 따라 남동쪽으로 약 200km를 흘러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된다. 이란에서는 아르반드 루드(Arvand Rud)라고 부르며, 이라크 내에서는 디즐라 알아우라(Dijla al-Awara, '애꾸눈 티그리스')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리적 특성

샤트알아랍강의 너비는 바스라(Basra) 부근에서 약 232m에서 하구에서 약 800m~1,500m까지 다양하다. 이란 측에서 합류하는 카룬강(Karun River)이 대량의 토사를 운반해 오기 때문에 항해 가능한 수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준설 작업이 필요하다. 강의 하구에서는 조석의 영향을 받으며, 염분 농도가 높은 편이다. 쿠웨이트의 부비얀섬(Bubiyan Island)은 샤트알아랍강의 삼각주 일부로 형성된 지형이다.

역사적 배경

샤트알아랍강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기부터 중요한 수로였다. 지질학적으로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과거에는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이 각각 별도의 하구를 통해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페르시아) 사이에서 이 수로의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이 지속되었다. 1639년 조하브 조약(Treaty of Zohab) 이후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였으나, 국경의 정확한 획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847년 제2차 에르주룸 조약, 1913년 콘스탄티노플 의정서 등을 거치며 국경 획정이 시도되었으나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세기 이후의 분쟁

1937년 이란과 이라크는 테헤란 조약을 체결하여 샤트알아랍강의 동쪽 저수선(低水線)을 국경으로 인정하되 아바단과 호람샤르 인근에서는 심수로선(thalweg)을 적용하기로 하였다. 이로 인해 이라크가 수로의 대부분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1969년 이란은 1937년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군함 호위 아래 자국 선박을 샤트알아랍강에 통행시켰다. 1975년 알제 협정(Algiers Accord)을 통해 양국은 심수로선을 국경으로 인정하고 이란은 이라크 내 쿠르드족 반군 지원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1980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알제 협정의 폐기를 선언하고 이란을 침공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 기간 동안 샤트알아랍강은 주요 전장 중 하나였다. 1988년 휴전 이후 양국은 알제 협정을 다시 준수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수로의 국경 획정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경제적·환경적 중요성

샤트알아랍강은 이라크의 유일한 페르시아만 출구로서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다. 이라크의 바스라와 이란의 아바단은 이 강을 끼고 발달한 주요 항구 도시이며, 석유 수출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강변에는 한때 세계 최대 규모의 대추야자 숲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1970년대 중반 약 1,700만~1,800만 그루에 달하던 야자수가 전쟁, 염분 축적, 해충 등의 영향으로 2002년까지 약 1,400만 그루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되었다.

명칭의 어원

'샤트알아랍'이라는 명칭은 아랍어 '샤트(šaṭṭ, 강둑 또는 강이라는 의미)'와 '알아랍(al-ʿArab, 아랍인)'의 합성어로, 문자 그대로 '아랍인의 강'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나, 학계에서는 '샤트'가 원래 '강둑' 또는 '측면'을 의미하는 데서 유래한 지형 용어로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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