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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쟈르 알두르

개요

샤쟈르 알두르(Shajar al-Durr, 아랍어: شجر الدر)는 13세기 이집트의 여성 통치자이다. 아랍어 이름의 뜻은 "진주의 나무"이며, 투르크계 출신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아이유브 왕조의 마지막 시기와 맘루크 술탄국의 성립기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이집트 역사상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술탄 자리에 오른 통치자로 기록된다. 사망 시점은 1257년 4월 28일로 알려져 있다.

생애와 출신

샤쟈르 알두르의 정확한 출생 연도와 출신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 다만 당대 사료들에 따르면 그녀는 투르크계 또는 아르메니아계 출신으로, 어린 시절 노예로 사들여졌다가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살리흐 아유브(As-Salih Ayyub)의 첩이 되었다. 이후 아들 칼릴(Khalil)을 낳은 뒤 술탄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제7차 십자군 시기의 역할

1249년,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이끄는 십자군이 이집트를 침공한 상황에서 술탄 알 살리흐가 사망하였다. 샤쟈르 알두르는 당시 국가가 침공 위기에 처해 있었던 점을 고려하여 술탄의 사망을 비밀로 하고, 고위 관리들과 함께 국정을 이어받았다. 이 시기 그녀는 이집트의 사실상 섭정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기록된다.

1250년, 십자군은 만수라 전투와 파리스쿠르 전투에서 패배하여 루이 9세가 포로로 잡혔다. 이후 사망한 술탄의 아들 투란샤(Turanshah)가 즉위하였으나, 샤쟈르 알두르 및 맘루크 세력과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투란샤는 1250년 5월 2일 맘루크 군인들에 의해 암살되었다.

술탄 즉위와 맘루크 왕조 성립

투란샤 암살 이후, 맘루크와 에미르들은 샤쟈르 알두르를 새로운 군주로 추대하였다. 그녀는 "말리카트 알무슬리민(무슬림의 여왕)" 등의 칭호를 사용하였고, 주화에도 그녀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는 아이유브 왕조의 종말과 맘루크 술탄국의 시작을 의미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시리아 지역의 아이유브 세력과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파는 여성 통치자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이집트에 남성 통치자를 세울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샤쟈르 알두르는 약 3개월간 통치한 뒤 맘루크 총사령관이었던 이즈 앗 딘 아이바크(Izz al-Din Aybak)와 재혼하고 왕위를 그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맘루크 왕조가 공식적으로 개창되었다.

말년과 사망

아이바크가 술탄으로 통치하는 동안에도 샤쟈르 알두르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257년, 샤쟈르 알두르는 아이바크가 다른 여성과 재혼하려 하자 그를 살해하였다. 이후 아이바크의 맘루크 세력에 의해 체포되었고, 같은 해 4월 28일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된다.

역사적 의의와 유산

샤쟈르 알두르는 맘루크 술탄국의 사실상 첫 번째 통치자로 간주되며,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여성으로서 최고 통치권을 행사한 극히 드문 사례로 꼽힌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녀를 아이유브 왕조의 마지막 통치자로 보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맘루크 왕조의 첫 번째 통치자로 평가하여 그 위치에 대한 해석이 엇갈린다.

또한 그녀는 카이로에 묘소와 마드라사(이슬람 교육기관) 등 건축물을 남겼으며, 이는 바흐리 맘루크 시기 묘지 건축의 선구적 사례로 평가된다. 그녀의 묘는 오늘날까지 카이로에 남아 있으며, 이슬람 장례 건축의 중요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한국어판 및 영어판 "샤쟈르 알두르" 항목
  • Encyclopædia Britannica, "Shajar ad-Durr"
  • World History Encyclopedia, "Shajara al-Durr"
  • Ruggles, D. Fairchild, Tree of Pearls: The Extraordinary Architectural Patronage of the 13th-Century Egyptian Slave-Queen Shajar al-Dur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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