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밀 살마노비치 바사예프(Шамиль Салманович Басаев, 1965년 1월 14일 ~ 2006년 7월 10일)는 체첸 출신의 분리주의 반군 지도자이자 테러 조직가로, 러시아 정부가 체첸 내전 기간 동안 최대의 적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미국 정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지정되었다.
생애와 배경
바사예프는 1965년 1월 14일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체첸-인구시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디시네베데노 마을에서 체첸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19세기 캅카스 전쟁에서 러시아에 맞서 싸운 체첸·다게스탄의 제3대 이맘 샤밀에서 유래했다. 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스탈린 정권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했으며, 1957년 흐루쇼프 시기에 귀환을 허용받았다.
198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소련 공군에서 복무했으며, 이후 모스크바로 이주해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부 입학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모스크바 토지관리공학연구소에 입학했으나 1988년 성적 부진으로 제적되었고, 모스크바에서 컴퓨터 판매업에 종사했다.
무장 활동의 시작
1991년 11월 체첸 민족주의 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바사예프는 동료들과 함께 아에로플로트 여객기를 납치해 비상사태 해제를 요구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터키에서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
이후 바사예프는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조지아의 압하지야 분리주의 운동 등 캅카스 지역의 여러 분쟁에 체첸 의용군 지휘관으로 참여했다. 특히 압하지야 전쟁에서 북캅카스 산악민족연맹(CMPC) 의용군의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 시기 러시아 군사정보국(GRU)의 지원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바사예프와 체첸 분리주의 측은 이를 부인했다.
1차 체첸 전쟁
1994년 12월 러시아군이 체첸을 침공하며 1차 체첸 전쟁이 발발하자, 바사예프는 두다예프 정부의 전선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그가 지휘한 '압하지야 대대'는 그로즈니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였다.
1995년 6월, 러시아 공습으로 가족 11명이 사망한 직후, 바사예프는 약 200명의 무장대원을 이끌고 남부 러시아의 부됴놉스크 병원을 점거하고 약 1,600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에서 최소 129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415명이 부상했다. 러시아 특수부대의 반복적인 진압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체첸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의 협상 개시를 이끌어내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바사예프는 체첸 내에서 민족 영웅으로 부상했다.
1996년 8월 바사예프는 아슬란 마스하도프와 함께 그로즈니 탈환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했고, 이후 러시아와의 평화 협정 체결로 체첸은 사실상의 독립을 획득했다.
전쟁 사이 기간
1996년 12월 체첸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마스하도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1997년 부총리로 임명되었고, 1998년 1월부터 7월까지 체첸 총리를 역임했다. 그러나 마스하도프 정부와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고, 이슬람 급진주의 성향을 강화하며 외국인 무장세력 지휘관 이븐 알-하타브와 연대했다.
2차 체첸 전쟁
1999년 8월, 바사예프와 하타브는 다게스탄 공화국을 침공해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시도했으나 러시아군에 격퇴되었다. 같은 해 9월 러시아의 아파트 연쇄 폭탄 테러(293명 사망)가 발생했으며, 러시아 정부는 이를 체첸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바사예프를 주요 용의자로 지목했다. 다만 바사예프와 하타브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으며, 이 사건의 배후에 대한 논란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차 체첸 전쟁 발발 후 바사예프는 게릴라전을 지휘했다. 2000년 1월 그로즈니에서 철수하던 중 지뢰를 밟아 오른쪽 다리 일부를 절단했다. 이후에도 무장 활동을 계속하며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2002년 그로즈니 정부 청사 폭탄 테러, 2004년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 2004년 러시아 여객기 폭파,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극 등을 배후에서 지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극은 33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사건으로, 대부분이 어린이였다.
사망
2006년 7월 10일, 바사예프는 인구시 공화국의 에카제보 마을 인근에서 무기 거래 중이던 차량 폭발로 사망했다. 러시아 정부는 연방보안국(FSB)이 원격 조종 폭발 장치를 이용한 특수 제거 작전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일부 정황 증거는 바사예프가 검사하던 지뢰가 폭발한 사고였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2006년 12월 유전자 검사로 유해가 확인되었고, 사후 체첸 분리주의 측에서 대원수(generalissimo) 계급으로 추서되었다.
평가
바사예프는 체첸 독립을 주장한 분리주의 운동의 군사 지휘관이자 동시에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초래한 테러 공격들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러시아·국제사회에서는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으며, 반면 일부 체첸 분리주의 지지 세력에서는 저항 운동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활동은 체첸 분리주의 운동의 성격을 세속적 민족주의에서 이슬람 급진주의로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