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릭스(Charix)는 프랑스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앵주에 위치한 코뮌(commune)이다. 실랑 호와 주냉 호 부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낭튀아에서 약 11km 떨어져 있다. 코뮌의 북쪽 경계는 주냉 호와 맞닿아 있다. 샤릭스 코뮌의 면적은 18.27km²이며, 해발고도는 최소 580m에서 최고 1,046m에 이른다. 코뮌의 대부분 면적은 임지대가 차지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인구는 284명이며, 인구밀도는 16명/km²이다. 샤릭스 주민은 '샤리앙'(Chariants) 또는 '샤리지앙'(Charisiens)이라 부른다.
지리
샤릭스는 오트뷔제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쥐라산맥 내부에 속한다. 실랑 호의 협곡을 굽어보는 자리에 있으며, 코뮌 내 최고고도 지점은 푸토 숲(991m)과 아프르몽 코뮌 내 뷔르데 산(1,043m)의 두 곳이다. 샤릭스에는 주냉 호 너머로 프롱드 하천, 발므 하천, 크레뒤비프 하천, 샤릭스 하천 등 네 개의 하천이 있으며, 물랭드라시 폭포, 캉본 폭포, 프롱드 폭포, 피스바슈 폭포 등 여러 폭포가 있다.
역사
샤릭스라는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1350년경에는 '샤리지옹'(In Charision), 1356년에는 '샤리'(Chary), 1613년에는 '샤리즈'(Chariz)라 불렸다. 어원은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15세기경 'vy des chars, des chers et des charrets'라는 표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가설이다.
1145년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낭튀아 소수도원의 소유 재산을 확인하는 문서에서 이 마을의 이름이 처음 언급되었다. 샤릭스는 1608년까지 낭튀아 소수도원의 소유지로 남아 있었으나, 마을 주민들은 일부 자치권을 인정받아 1382년부터 토지 개간권을 갖게 되었다.
17세기에는 이 일대가 세력 충돌의 장으로 변모하였다. 1604년에는 그리와 퀴아네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서 프랑크콩투아 군 500여 명이 샤릭스 마을을 습격해 잿더미로 만들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마을 주민 수는 652명이었으며, 이 중 일부는 발므 지역의 트래버틴 채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1851년 화재가 발생해 마을 일부가 소실되었다. 이후 샤릭스의 경제활동은 채석장과 방직물(삼 재배)에 집중되었다. 1879년에는 리옹에 '샤릭스 오트뷔제 채석회사'가 설립되고 오트뷔제 철로가 개설되면서 채석 산업이 활기를 띠었다. 1900년부터는 마을 내에 전화선이 들어왔다.
1845년에는 샤릭스 코뮌과 생제르맹드주 코뮌을 분할하여 플라뉴 코뮌이 새로 만들어졌다.
명소
샤릭스 생타망 교회(L'église Saint-Amant de Charix)는 1613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교회로, 한때 파괴되었다가 1840년부터 1842년까지 건축가 와로케의 주도로 복원되어 현재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교회 건너편에는 여러 종교 기념물이 있다. 샤릭스 마을 내에는 네 개의 십자가가 있고, 쇼퐁 마을에는 성모상이 서 있다. 이 다섯 개의 기념상은 1864년 마을 의회의 결정으로 세워져 1865년에 설치가 완료되었다.
샤릭스 코뮌 내에는 주냉 호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으며, 겨울에는 스케이트와 얼음입수 스포츠가 가능하다. 호수 부근에는 스키 코스도 자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