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앙리 상송(프랑스어: Charles-Henri Sanson, 1739년 2월 15일 ~ 1806년 7월 4일)은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으로, 루이 16세 치세 동안 왕실 사형 집행인을 지냈고 이후 제1공화정의 최고 사형 집행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40년 이상 파리 형사 재판 사형 집행관(Exécuteur des arrêts criminels de Paris)으로서 약 3,000건에 가까운 처형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과 가문
샤를 앙리 상송은 1739년 2월 15일 파리에서 샤를 장바티스트 상송과 그의 첫 번째 부인 마들렌 트롱송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인 샤를 상송(1658~1695)은 프랑스 왕실 군대에서 복무한 후 파리의 사형 집행인으로 임명되었으며, 구체제 아래에서 사형 집행인 직위는 세습되는 관행이 있었다. 상송 가문은 1688년부터 1847년까지 6대에 걸쳐 파리의 사형 집행인 직을 세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상송은 루앙의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1753년경 사형 집행인의 아들로서의 신분이 드러나면서 학교를 떠나 개인 교습을 받았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마비된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사형 집행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1757년, 18세의 나이로 그는 삼촌 니콜라샤를가브리엘 상송을 도와 루이 15세 암살 미수범 로베르프랑수아 다미앙에 대한 극도로 잔혹한 능지처형 집행에 참여했다. 이 처형은 프랑스에서 마지막으로 시행된 사지 절단형이었으며, 목격한 처형 광경은 젊은 상송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경력
1778년 12월 26일, 샤를 앙리 상송은 정식으로 직무에 선서하고 전통적인 주홍색 코트를 받았다. 그는 '파리의 무슈(Monsieur de Paris)'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 최대 6명의 조수와 함께 처형을 집행했다.
1791년 형법전은 사형 전 고문을 폐지하고 단일 사형 방법으로 단두대(길로틴)를 도입했다. 상송은 단두대를 사용한 최초의 사형 집행인으로, 1792년 4월 17일 파리의 비세트르 병원에서 프로토타입 검사 및 테스트를 주도했다. 1792년 4월 25일, 그는 니콜라 자크 펠르티에를 처형하면서 단두대 시대를 열었다.
상송은 단두대 채택에 실질적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의회에 전문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는 검으로 하는 참수형이 다수의 사형수를 처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과도한 부담이 따르며, 도구의 마모와 교체 비용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루이 16세 처형
1793년 1월 21일, 상송은 루이 16세의 처형을 집행했다. 이는 사형 집행인이 군주를 처형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상송은 처음에 이 임무를 받아들이는 것을 망설였으나 결국 수락했다. 처형 후 루이 16세의 유품이 불법적으로 유통되었다는 소문에 대해 상송은 공개적으로 부인했고, 1793년 2월 21일 자신의 신문 기고를 통해 왕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공포정치 시기
1793년 7월 17일 샤를로트 코르데를 처형했으며, 1793년 10월 31일에는 10명의 조수와 함께 21명의 지롱드파 지도자들을 36분 만에 처형했다. 이후 에베르, 당통, 데물랭, 생쥐스트, 로베스피에르 등 공포정치의 주요 인물들을 차례로 처형했다. 1794년 2월 2일 일기에서 상송은 혁명 재판소의 가혹한 선고를 비판하며, 사형 집행인은 정치적 의견을 가진 시민이 아닌 살인자와 도둑을 처벌해야 한다고 적었다.
전체 경력을 통해 상송은 2,918건의 처형을 집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789년 7월 14일부터 1796년 10월 1일 사이에만 2,548건이 집행되었으며, 그중 370명이 여성, 22명이 미성년자, 9명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였다. 그는 군주정, 입법의회, 국민공회, 총재정부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인 정권 아래에서 중단 없이 복무했다.
말년과 사망
신장염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송은 1795년 8월 30일 사형 집행인 직을 사임했다. 그의 아들 앙리가 1795년 9월 4일 정식 후계자로 임명되었으나, 이후에도 부자는 함께 처형 업무를 계속 수행한 것으로 확인된다. 샤를 앙리 상송은 1806년 7월 4일 파리에서 사망하여 몽마르트르 묘지의 가족 묘역에 안장되었다.
사후 평가
상송의 사후 명성은 19세기에 출판된 일련의 회고록에 의해 크게 형성되었다. 1830년과 1831년에 출판된 《사형 집행인 회고록》(Mémoires de l'exécuteur des hautes-œuvres)은 오노레 드 발자크가 일부를 집필한 위작으로, 앙리 상송이 공개적으로 부인했다. 이후 1862~1863년 앙리클레망 상송이 가문의 문서와 기록을 바탕으로 《일곱 대의 사형 집행인》(Sept générations d'exécuteurs)을 출판하여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