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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프레시네

샤를 드 프레시네(Charles de Freycinet, 본명: 샤를 루이 드 솔스 드 프레시네, Charles Louis de Saulces de Freycinet, 1828년 11월 14일~1923년 5월 14일)는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공학자로, 제3공화국 시기에 총 4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총리(수상)를 역임하였다.

프레시네는 프랑스 남부 아리에주(Ariège)주 푸아(Foix)에서 개신교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삼촌은 프랑스의 항해가였던 루이 드 프레시네(Louis de Freycinet)이다. 그는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에서 수학한 뒤 광산 기사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조직 및 행정 능력을 인정받았다.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발발 이후, 프랑스 제3공화국이 수립되면서 그는 레옹 강베타(Léon Gambetta)의 휘하에서 활동하며 전시 행정과 군사 조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1876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877년 12월에는 공공사업부 장관이 되었다.

프레시네는 공공사업부 장관 재임 시기에 철도의 국가 점진적 인수를 포함한 대규모 인프라 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79년 12월에는 윌리엄 와딩턴(William Waddington)의 뒤를 이어 총리 겸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이후 1882년, 1886년, 1890년에 다시 총리직을 맡아 총 네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특히 이집트 문제를 둘러싼 외교 정책과 관련해 프랑스 의회와의 갈등 과정에서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그의 정치 경력 중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히는 것은 1888년부터 1893년까지 약 5년간 여러 내각에 걸쳐 유지한 국방부 장관(육군부 장관) 재임 기간이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서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인물로서, 병역 3년제 도입, 참모본부 및 최고 전쟁 회의 설치, 군대 조직 개편 등의 군사 개혁을 주도했다.

그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었으며, 1890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저술 활동도 활발히 하여 《합리 역학 논고》(1858), 《무한소 해석에 관하여》(1860), 《과학의 철학에 관한 시론》(1896), 《이집트 문제》(1905) 등의 저작을 남겼다.

프레시네는 1923년 5월 14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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